어른이 없는 집에서 들린 두 번의 소리
그날 밤, 현관문 밖에 정말 아무도 없었을까
어릴 때 살던 아파트에서 이상한 일을 두 번 겪었습니다.
첫 번째는 전원도 건전지도 없는 라디오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린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는데, 현관문 외시경으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라디오를 더 무서운 기억으로 여겼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라디오는 적어도 제 눈앞에 있었다는 것을요.
제1장|어른이 늦게 돌아오는 집
열한 살 때까지 우리 가족은 오래된 아파트 4층에 살았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집에 오려면 계단을 끝까지 걸어 올라와야 했습니다. 누가 급하게 올라오면 발소리가 벽을 타고 먼저 도착했습니다. 반대로 내려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집 안에 있어도 어느 층쯤 지나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당시 위층은 비어 있었습니다.
밤이 되면 집은 조용했습니다. 낮에는 듣지 못했던 냉장고 소리나 창틀이 조금씩 우는 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그런 소리에는 차츰 익숙해졌습니다.
익숙해지지 않는 건 어머니가 돌아오시기 전까지의 시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다른 운전자의 졸음운전 때문에 큰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일을 마친 뒤 병원에 들렀다가 집에 오셨습니다.
어머니가 늦는 날이면 집에는 저와 어린 남동생만 있었습니다.
동생은 제가 옆에 있으면 잘 놀았습니다. 저도 동생이 곁에 있으면 덜 무서웠습니다. 다만 동생은 제가 무섭다는 걸 알아차리면 안 됐습니다.
그래서 복도에서 소리가 나면 제가 먼저 고개를 들었고, 집 안 어디선가 작은 소리가 들리면 제가 먼저 확인하러 갔습니다.
할 수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닙니다.
동생이 저를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2장|엄마 목소리인 줄 알았다
그날은 밤 10시쯤이었습니다.
동생과 방바닥에 장난감을 늘어놓고 놀고 있었습니다. 동생이 장난감을 제 쪽으로 밀며 무슨 말을 하려던 순간, 거실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두 사람 이상인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 짧게 말하고, 다른 누군가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말과 말 사이의 간격은 분명했습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들을 수 있는, 평범한 대화처럼 들렸습니다.
동생이 저를 쳐다봤습니다.
저도 동생을 봤습니다.
어머니가 돌아오신 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장난감을 놓고 방에서 뛰어나갔습니다. 저는 거실을 가로질러 현관 쪽부터 봤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신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텔레비전도 꺼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소리는 계속 들렸습니다.
조금 전 방에 있을 때보다 더 가까웠습니다.
동생이 제 뒤로 바짝 붙었습니다. 저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천천히 걸었습니다. 거실 한쪽에 치워둔 낡은 라디오였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입니다.
그 라디오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대화인지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한 걸음 다가가면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막상 가까워지면 여러 목소리가 뭉개졌습니다.
동생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저는 얼른 말했습니다.
“내가 켜놓고 잊었나 봐.”
동생을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라디오에 손을 댄 적이 없었습니다.
제3장|비어 있는 곳에서 나는 소리
라디오를 끄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가까이 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동생에게 거기 있으라고 하고 라디오 앞에 앉았습니다. 낡은 기계 표면에는 손가락으로 문지른 자국도 없었습니다.
라디오 뒤로 선 하나가 내려와 있었습니다.
전원선이었습니다.
끝을 따라가 보니 플러그가 바닥에 놓여 있었습니다.
콘센트에는 아무것도 꽂혀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플러그를 집었습니다. 금속 부분이 손끝에 닿았습니다. 분명히 벽에서 떨어져 있었습니다.
등 뒤에서 동생이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건전지겠지.
라디오는 건전지로도 작동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그 설명을 찾자마자 조금 안심했습니다. 동생에게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라디오를 들어 뒤로 돌렸습니다.
그동안에도 말소리는 끊기지 않았습니다.
기계를 움직이자 목소리가 나는 방향도 함께 움직였습니다. 소리가 다른 곳에서 나는 건 아닐까 하고 품었던 마지막 의심이 사라졌습니다.
뒷면의 건전지함 덮개를 밀었습니다.
안은 비어 있었습니다.
저는 잠시 그 빈칸을 보고 있었습니다. 눈으로 확인하고도 손가락을 넣어 바닥을 더듬었습니다. 건전지가 보이지 않는 틈에 끼어 있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습니다.
재생 버튼도 눌려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라디오 앞면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의 대화가 흘러나왔습니다.
바로 뒤에서 동생이 물었습니다.
“왜 그래?”
저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조금 전까지 동생에게 보여주려던 것은 간단한 답이었습니다. 건전지가 들어 있으니까 소리가 나는 거라고 말하면, 동생도 울음을 멈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손에 든 건 빈 건전지함의 덮개뿐이었습니다.
저는 라디오를 내려놓았습니다.
양손이 떨리지 않도록 바닥에 천천히 놓았습니다. 동생이 제 얼굴을 보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말소리는 여전했습니다.
갑자기 어떤 단어가 또렷하게 들릴까 봐 겁이 났습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동안은 방송이라고 우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더는 귀를 가까이 대지 않았습니다.
동생을 데리고 방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거실을 비우면, 닫힌 방문 너머에서 그 소리가 계속 들릴 것 같았습니다. 소리가 어디에서 나는지 눈으로 보고 있는 편이 나았습니다.
우리는 라디오에서 조금 떨어져 나란히 앉았습니다.
저는 동생의 등을 쓸어주면서 라디오만 바라봤습니다. 동생이 잠깐 조용해지면 이번에는 라디오 소리가 더 크게 들렸습니다. 제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동생도 같이 움찔했습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릅니다.
목소리가 조금씩 희미해졌습니다.
멀어지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방금까지 거실 안에 있던 대화가 벽 건너편으로 옮겨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완전히 조용해졌습니다.
저는 그 침묵도 곧바로 믿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마디가 들릴까 봐, 한동안 라디오에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제4장|외시경 너머의 검은색
현관문에서 있었던 일은 다른 날 밤입니다.
그날도 어머니는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고, 집에는 동생과 저만 있었습니다.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저는 먼저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현관으로 걸어가자 동생도 뒤따라왔습니다.
당시 집에는 인터폰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누가 찾아오면 외시경으로 먼저 확인하라고 하셨습니다. 문을 열어야 할 때는 막대형 안전고리를 걸고 조금만 열라고도 하셨습니다.
저는 발끝을 들어 외시경에 눈을 댔습니다.
까맸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를 내려 자세를 고쳐 잡고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여전히 까맸습니다.
복도 조명이 어두운 날에도 벽이나 계단 난간의 윤곽은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외시경 안에 깊이가 없었습니다.
눈 바로 앞을 누가 막아놓은 것 같은 검은색이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광고 전단지가 현관문에 붙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저는 종이가 외시경을 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이라기보다,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구세요?”
문 너머에서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저는 귀를 문 가까이 가져갔습니다. 밖에서 발을 옮기는 소리라도 들릴까 싶었습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다시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소리가 멎자 동생이 제 뒤에서 작은 목소리로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직 모른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라면 제 목소리를 듣고 대답하셨을 겁니다.
그 생각이 들자 외시경을 다시 보기가 싫어졌습니다. 그래도 확인해야 할 것 같아 한 번 더 들여다봤습니다.
새까맸습니다.
밖을 볼 수 없다는 게 점점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저는 누가 왔는지 모르는데, 밖에 있는 사람은 초인종을 누른 뒤 우리가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있을지도 몰랐습니다.
제가 현관까지 걸어온 소리.
“누구세요?”라고 묻는 목소리.
제 뒤에서 동생이 말하는 소리까지.
초인종이 세 번째 울렸습니다.
그제야 저는 문밖에 있는 사람이 우리가 집에 있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5장|문이 멈춘 자리
저는 막대형 안전고리를 걸었습니다.
금속 끝을 고리에 끼우고 손으로 당겨봤습니다. 빠지지 않았습니다.
문을 조금 열어 확인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대로 하고 있으니까 괜찮을 거라고요.
그런데 손잡이를 잡자 손바닥에 땀이 난 걸 알았습니다.
문밖에서는 더 이상 초인종이 울리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돌아섰다면 계단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소리가 없었습니다.
저는 문손잡이를 돌렸습니다.
손바닥 너비만큼 문이 열리고 안전고리에 걸려 멈췄습니다.
틈 사이로 맞은편 벽이 보였습니다.
계단 쪽 난간도 보였습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고개를 조금 움직여 시야를 넓혀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문이 열릴 수 있는 너비는 정해져 있었습니다. 제가 볼 수 있는 곳에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초인종을 누른 사람이 이미 내려갔다면 발소리가 들렸어야 했습니다.
누군가 그 계단을 조용히 내려가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낮에도 계단참을 밟는 소리가 집 안까지 울리는 건물이었습니다.
저는 문틈을 바라본 채 숨을 멈췄습니다.
누가 눌렀지?
조금 전까지 문 바로 앞에 사람이 있었어야 합니다. 외시경이 까매질 만큼 문 가까이에 무언가 있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 눈에 들어오는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동생이 뒤에서 제 옷을 잡아당겼습니다.
그제야 문을 닫았습니다.
잠금장치를 끝까지 돌리고, 손잡이를 한 번 더 잡아당겨 확인했습니다.
동생과 저는 현관에서 물러났습니다.
저는 문을 계속 보고 있었습니다.
다시 초인종이 울리면 절대로 열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울리지 않으니 이번에는 문밖에 아직 누가 서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날 제가 기다린 것은 초인종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 비로소 문앞을 떠났다고 믿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끝내 듣지 못했습니다.
제6장|어머니가 돌아온 뒤
어머니가 귀가하셨을 때 저는 현관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습니다.
초인종이 여러 번 울렸고, 외시경은 전단지에 가려진 것처럼 까맸다고요. 안전고리를 건 채 문을 열었는데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고요.
어머니는 현관문을 살펴보셨습니다.
전단지는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평소 문에 붙은 광고지를 보면 떼어 들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날 어머니의 손에도 종이는 없었습니다.
저도 밖에 나가 외시경 주위를 확인했습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전단지를 붙였다가 떼어갔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문을 열기 전 떨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오셨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놓였습니다. 어린 제게는 어른이 집에 오면 무서운 일도 끝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소리를 들은 두 밤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라디오의 목소리는 무엇이었는지.
초인종을 누른 것은 누구였는지.
둘 중 어느 것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에필로그|문이 가리고 있던 곳
어른이 된 뒤, 현관문을 열었던 순간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어릴 때는 외시경이 까맣게 보인 이유를 전단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종이가 아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문밖에서 누군가 손바닥으로 렌즈를 막고 있었다면, 제가 본 것처럼 외시경 전체가 까맣게 보였을 것입니다.
“누구세요?”라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초인종만 다시 눌렀던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안전고리를 걸고 문을 조금 열었을 때도, 저는 복도의 일부만 봤습니다.
맞은편 벽과 계단 쪽.
문이 가린 바로 옆자리까지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거기에 누군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아마 영원히 확인할 수 없을 겁니다.
라디오와 초인종이 관련 있다는 근거도 없습니다. 그저 어른이 없는 집에서 저와 동생이 겪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기억은 둘을 자꾸 같은 장면에 놓습니다.
라디오에서 목소리가 날 때 저는 동생을 안심시키려고 거짓말했습니다. 초인종이 울렸을 때는 동생을 지키려고 어머니가 알려주신 대로 안전고리를 걸었습니다.
두 번 다 제가 뭘 하고 있는지 안다고 믿었습니다.
라디오는 아무 전원이 연결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겁이 났습니다.
현관문은 더 늦게 겁이 났습니다.
문을 열고, 다시 닫고, 어른이 된 뒤에야요.
그날 밤 문밖에 정말 아무도 없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제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제가 들여다본 좁은 틈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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