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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공포 이야기와 인생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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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파일 고스트 아카이브공포 괴담

밤 12시마다 내가 잠든 사진이 도착했다

By seoulaura
9월 19, 2026 10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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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막 커튼 뒤의 사람

낯선 방의 밤에는 사물들이 자기 목소리를 되찾는다.

낮에는 그저 가구였던 것들이 불이 꺼지면 기척이 되고, 아무 의미 없던 소음은 누군가의 움직임처럼 들린다.

냉장고의 모터가 낮게 떨리는 소리.
수도관 안쪽에서 물이 넘어가는 소리.
위층 사람이 슬리퍼를 끌며 걷는 소리.
현관문 밖에서 발걸음이 멈췄다가 다시 멀어지는 소리.

처음 혼자 살기 시작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 모든 소리를 외우게 된다.

어떤 소리는 매일 같은 시간에 들리고, 어떤 소리는 비가 오는 날에만 들린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면 눈을 감고도 알 수 있다.

이건 냉장고 소리.
이건 위층 사람.
이건 바람에 흔들리는 창문.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알게 된다.

지금 들린 소리는 이 집에서 원래 나던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민지가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첫 자취를 시작한 지 두 달쯤 되었을 때였다.


1. 벽이 얇은 집

민지의 원룸은 회사에서 버스로 세 정거장 떨어진 오래된 다세대주택 3층에 있었다.

방은 여덟 평도 되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면 오른쪽에 작은 싱크대가 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욕실이 있었다. 방 안쪽 창문 옆으로 침대를 붙여놓고 나니 책상 하나 놓을 자리만 겨우 남았다.

건물은 낡았지만 월세가 저렴했고 지하철역도 가까웠다. 무엇보다 민지에게는 태어나 처음으로 생긴 자신만의 공간이었다.

이사 첫날, 민지는 침대 밑과 싱크대 안쪽까지 직접 닦았다.

특히 침대 밑에는 이전 세입자가 남긴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민지는 매트리스까지 들어낸 뒤 기다란 밀대로 바닥을 여러 번 닦았다. 그래서 그 공간에 무엇이 있었고, 무엇이 없었는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침대 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 며칠은 낯선 소리 때문에 잠을 설쳤다.

새벽 한 시가 되면 위층에서 의자를 끄는 소리가 났고, 두 시가 조금 넘으면 욕실 배수관에서 꿀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끔은 현관문 밖으로 누군가 계단을 올라왔다.

한 층.

두 층.

세 층.

발소리는 민지의 집 앞에서 멈췄다.

그러나 초인종은 울리지 않았다.

잠시 기다렸다가 문을 열어보면 센서등이 켜진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민지는 오래된 건물의 방음 문제라고 생각했다.

처음 혼자 살다 보니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진 것이라고 자신을 달랬다.

그때까지는 정말 그렇게 믿었다.


2. 숫자로만 된 계정

문제가 시작된 것은 어느 화요일 밤이었다.

잠들기 전 휴대전화를 보고 있던 민지에게 SNS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프로필 사진도, 게시물도 없었다. 계정 이름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가 길게 나열되어 있었다.

민지는 광고나 불법 사이트로 유도하는 스팸이라고 생각했다.

메시지에는 아무런 글도 없었다.

사진 한 장만 첨부되어 있었다.

무심코 사진을 열어본 민지는 한동안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진 속에는 자신이 서 있었다.

얼굴과 머리 모양은 물론이고, 목 아래에 있는 작은 점까지 정확했다.

하지만 사진이 찍힌 장소는 알 수 없었다.

폭이 한 사람의 어깨보다 조금 넓은 어두운 골목이었다. 양쪽 벽에는 검은 곰팡이가 번져 있었고, 젖은 시멘트 바닥에서는 물이 번들거렸다.

사진 속 민지는 골목 한가운데 서 있었다.

이상한 것은 표정이었다.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두 어깨는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고, 입술은 무언가를 참는 것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무엇보다 눈동자가 카메라를 보고 있지 않았다.

카메라를 든 사람의 어깨 너머를 보고 있었다.

그 뒤에 서 있는 무언가를 보는 눈이었다.

민지는 사진을 확대했다.

합성 사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얼굴 사진 몇 장만 있어도 이런 이미지를 만들 수 있으니까.

그런데 사진 오른쪽 구석에서 이상한 것이 보였다.

녹슨 배관에 감긴 붉은색 테이프였다.

어디선가 본 것 같았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기분이 나빠진 민지는 계정을 차단하고 사진을 삭제했다.

그것으로 끝날 줄 알았다.

다음 날 밤 12시 정각.

또 다른 계정에서 사진이 도착했다.

역시 프로필은 없었고, 이름은 숫자로만 되어 있었다.

이번 사진 속 민지는 창문 하나 없는 회색 방에 앉아 있었다.

천장에는 형광등 한 개가 매달려 있었고 바닥에는 검은 물이 얕게 고여 있었다. 민지의 양손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하지만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누군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세 번째 날에는 낡은 계단에 서 있는 사진이 도착했다.

네 번째 날에는 현관문 앞에 서 있는 사진이 왔다.

그런데 그 현관문은 민지의 집 문이었다.


3. 사진 속에서 가까워지는 사람

사진은 매일 밤 12시 정각에 도착했다.

계정을 차단하면 다음 날 새로운 계정이 만들어졌다. 신고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계정이 사라지는 날도 있었다.

처음에는 민지가 가본 적 없는 장소들이었다.

좁은 골목.
창문 없는 방.
낡은 계단.

그러나 사진 속 장소는 하루가 지날수록 민지의 생활 반경에 가까워졌다.

자취방 건물의 외벽.

1층 공동현관.

3층 복도.

그리고 마침내 민지의 방 안.

여섯 번째 사진에서 민지는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사진은 침대 옆 바닥과 거의 같은 높이에서 찍혀 있었다. 누군가 무릎을 꿇었거나, 바닥에 엎드린 채 잠든 민지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찍은 구도였다.

민지는 사진을 보는 순간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불을 모두 켜고 방 안을 확인했다.

욕실에도, 싱크대 아래에도 아무도 없었다. 현관문은 잠겨 있었고 창문도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침대 밑을 비췄다.

아무것도 없었다.

다음 날에는 잠든 민지의 뒤통수를 찍은 사진이 도착했다.

사진 오른쪽에 검은 천이 희미하게 걸쳐 있었다.

민지는 그 천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보았다.

창문에 달아놓은 암막 커튼이었다.

그 사진은 커튼 안쪽에서 침대를 바라보며 찍힌 것이었다.

누군가 커튼 뒤에 서서 민지가 잠드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민지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메시지와 사진을 저장하고 계정의 접속 기록을 추적했다. 그러나 접속 위치는 해외 여러 지역을 계속 옮겨 다녔다. 계정은 생성과 삭제를 반복했고, 사용된 이메일과 전화번호도 모두 가짜였다.

현관문에는 강제로 열고 들어온 흔적이 없었다. 도어록 기록에도 민지가 외출하거나 귀가한 시간 외에는 문이 열린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다.

경찰관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순찰을 강화하고 계속 확인해 보겠습니다. 다만 현재로서는 실제 침입을 입증할 흔적이 부족합니다.”

민지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범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

사진만으로는 누군가가 실제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

결국 더 분명한 피해가 발생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민지는 그날부터 문이 잠겼는지 몇 번씩 확인했다.

손잡이를 당기고, 또 당겼다.

문틈에는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끼워놓았다. 누군가 문을 열면 머리카락이 떨어지도록 했다. 창틀에는 투명 테이프를 붙였다.

침대 밑과 옷장 안도 매일 확인했다.

그러나 머리카락도, 테이프도 그대로였다.

그런데도 사진은 계속 도착했다.

그것도 늘 방 안에서 찍힌 사진이었다.


4. 피해가 일어나기 전에는

민지는 더 이상 회사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컴퓨터 모니터가 꺼질 때마다 검은 화면에 누군가 비치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닫히는 문 사이로 자신을 지켜보는 얼굴이 있는지 확인했다.

퇴근길에는 일부러 같은 길로 다니지 않았다.

편의점에 들렀다가 골목을 돌아 집으로 갔고, 누군가 뒤따라오는 것 같으면 사람이 많은 카페로 들어갔다.

어느 날에는 퇴근 후 세 시간을 밖에서 돌아다닌 뒤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날 밤 12시에 도착한 사진에는 현관 앞에 서서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는 민지의 뒷모습이 찍혀 있었다.

촬영자는 바로 뒤에 서 있었다.

민지는 사진 속 현관문의 금속 부분을 확대했다.

흐릿하게 일그러진 반사면 위로 길쭉한 검은 형체가 보였다.

사람이었다.

키가 큰 사람이 민지의 등 바로 뒤에 붙어 있었다.

그 순간 민지는 이상한 사실을 깨달았다.

집에 들어올 때 뒤에서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센서등 아래에서 자신의 그림자 외에 다른 그림자를 본 기억도 없었다.

그런데 사진 속에는 분명 누군가가 있었다.

그날 이후 민지는 집 안에서도 신발을 벗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도망칠 수 있도록 현관 가까이에 가방을 두었다. 잠들 때는 식칼을 침대 옆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사진이 아니었다.

사진이 오기 전의 기다림이었다.

밤 11시 58분.

11시 59분.

휴대전화 시계의 숫자가 바뀔 때마다 심장이 빨라졌다.

그리고 정확히 12시가 되면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

마치 상대가 겁에 질린 민지의 얼굴을 어딘가에서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단 한 번도 시간이 어긋나지 않았다.


5. 모든 연결을 끊다

민지는 결국 자신을 찾을 수 있는 모든 통로를 없애기로 했다.

SNS 계정을 전부 삭제했다.

전화번호를 바꾸고, 메신저 계정도 새로 만들었다.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당분간 자신의 사진과 위치를 인터넷에 올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날 저녁에는 방 안을 완전히 뒤졌다.

매트리스를 세우고 침대 밑을 닦았다. 옷장 속 옷을 모두 꺼냈고, 싱크대 아래와 욕실 천장 점검구까지 확인했다.

아무도 없었다.

침대 밑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암막 커튼을 빈틈없이 닫았다.

커튼 양 끝을 집게로 고정하고 아래쪽 틈까지 작은 상자로 눌렀다. 바깥에서 한 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도록 만들었다.

방 안은 낮에도 밤처럼 어두워졌다.

그제야 민지는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이제 상대는 자신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인터넷도 끊었고, 번호도 바꿨으며, 창문까지 완전히 가렸다.

그날 밤 12시에는 아무런 메시지도 오지 않았다.

다음 날에도 오지 않았다.

그다음 날에도 휴대전화는 조용했다.

민지는 마침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 존재가 자신을 찾아온 통로는 온라인이었고, 자신이 그 통로를 끊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녀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가능성이 하나 있었다.

그 사람이 인터넷을 통해 민지를 찾아낸 것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민지가 사는 곳을 알고 있었다면?

SNS 메시지는 민지에게 접근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이미 가까이 있는 사람이 그녀의 반응을 관찰하기 위해 던진 미끼였다면?

그리고 암막 커튼을 닫게 만드는 것이 처음부터 그 사람의 목적이었다면?


6. 침대 밑에서 울린 전화

사진이 끊긴 지 나흘째 되던 밤이었다.

민지는 오랜만에 방 안의 불을 모두 끄고 침대에 누웠다.

암막 커튼 때문에 가로등 빛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어둠이었다.

그날따라 집 안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매일 들리던 냉장고 소리도, 위층의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민지는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올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따르릉.

갑자기 어둠 속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민지는 눈을 떴다.

처음에는 꿈인 줄 알았다.

따르릉.

따르릉.

요즘 휴대전화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오래된 유선전화의 금속 종을 망치로 두드리는 듯한 날카로운 벨소리였다.

민지는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화면은 꺼져 있었다.

벨소리는 스마트폰에서 나는 것이 아니었다.

따르릉.

따르릉.

소리는 방 안 어딘가에서 울리고 있었다.

차가운 금속성 소리가 벽에 부딪혀 사방으로 퍼졌다. 벨이 울릴 때마다 침대 프레임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민지는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곧 소리가 나는 위치를 알아차렸다.

침대 밑이었다.

자신이 누워 있는 바로 아래에서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민지는 움직이지 못했다.

불과 나흘 전, 침대 밑을 직접 닦았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면 문틈에 끼워둔 머리카락이 떨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오늘 저녁에도 머리카락은 그대로였다.

창문에 붙인 테이프도 뜯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 전화기는 어떻게 침대 밑으로 들어온 것일까?

그보다 더 무서운 생각이 뒤따랐다.

전화기를 가져온 사람이 아직 방 안에 있다면?

민지는 경찰에 전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공포가 너무 커지면 사람은 도망치지 못한다. 오히려 두려움의 정체를 확인하려 한다. 보지 않으면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이상한 충동에 사로잡힌다.

민지는 스마트폰 손전등을 켰다.

가느다란 빛이 어둠을 갈랐다.

몸을 천천히 침대 바깥으로 내밀어 바닥을 비췄다.

먼지가 얇게 내려앉은 침대 밑 구석에서 작은 액정이 깜빡이고 있었다.

낡은 폴더폰 한 대였다.

액정 주위를 감싼 은색 테두리는 여기저기 벗겨져 있었고, 전화가 울릴 때마다 붉은색과 초록색 불빛이 번갈아 들어왔다.

따르릉.

따르릉.

폴더폰은 작은 짐승이 몸을 떠는 것처럼 바닥 위에서 진동하고 있었다.

민지는 침대 밑으로 손을 뻗었다.

손끝이 전화기에 닿았다.

차가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화기는 미지근했다.

누군가 조금 전까지 손에 쥐고 있었던 것처럼 따뜻했다.


7. 뒤를 돌아봐야지

민지는 폴더폰을 집어 들었다.

액정에는 발신번호가 표시되지 않았다.

그저 전화가 오고 있다는 표시만 희미하게 깜빡였다.

벨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민지는 전화를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엄지손가락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대답은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낮은 잡음만 흘러나왔다.

긴 터널 안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가는 듯한 소리였다. 그 사이로 무언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스으.

하아.

스으.

하아.

누군가 숨을 쉬고 있었다.

민지는 폴더폰을 귀에서 떼려 했다.

그때 수화기 너머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딸깍.

그리고 거의 동시에 방 안의 냉장고가 딸깍거리며 작동을 멈췄다.

민지의 손이 굳었다.

전화기 너머의 소리가 먼저 들렸다.

그 직후 같은 소리가 실제 방 안에서 울렸다.

수화기 반대편에 있는 사람도 이 방 안에 있다는 뜻이었다.

이번에는 천이 스치는 소리가 전화기에서 들렸다.

사각.

1초쯤 지나자 민지의 등 뒤에서도 똑같은 소리가 났다.

사각.

암막 커튼이 움직이는 소리였다.

민지는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낮고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였다.

민지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자신의 목소리였다.

단어 끝이 조금 갈라지는 습관도, 숨을 들이마시는 방식도 똑같았다. 녹음이나 어설픈 합성으로는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정확했다.

민지의 목소리가 아주 다정하게 말했다.

“지금 침대 밑을 보고 있네. 뒤를 돌아봐야지.”

그 말이 끝난 순간, 등 뒤에서 집게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딱.

민지가 커튼을 고정해 두었던 집게였다.

이어서 상자가 천천히 밀리는 소리가 났다.

드르륵.

드르륵.

커튼 아래의 틈을 막아두었던 상자가 안쪽에서 밀려 나오고 있었다.

민지는 입을 벌렸지만 비명은 나오지 않았다.

손전등 빛이 떨렸다.

휴대전화 화면 너머로 침대 옆 벽에 비친 그림자가 보였다.

민지의 그림자 뒤로 또 하나의 그림자가 서서히 길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커튼 뒤에서 나오고 있었다.

먼저 맨발 하나가 나타났다.

크고 창백한 발이었다.

발가락 사이와 발등에는 검은 먼지가 묻어 있었다.

그다음 다른 발이 커튼 밖으로 나왔다.

누군가는 민지가 모든 빛을 차단하고 안전하다고 믿었던 그 공간에 서 있었다.

어쩌면 몇 분 전부터.

어쩌면 민지가 잠들기 전부터.

아니면 민지가 이 방으로 이사 온 날보다 훨씬 전부터.

발소리가 한 걸음 가까워졌다.

쿵.

전화기 속에서도 같은 발소리가 들렸다.

쿵.

다시 한 걸음.

민지의 목덜미에 따뜻한 숨이 닿았다.

손에 든 폴더폰에서는 자신의 목소리가 낮게 웃고 있었다.

그 웃음 사이로 이번에는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섞여 들었다.

그리고 전화기 속 민지가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이번에는 네가 사진을 찍을 차례야.”

그 직후 방 안의 모든 소리가 끊겼다.


8. 사라진 민지

다음 날 아침, 출근하지 않은 민지를 걱정한 회사 동료가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원룸에 도착했을 때 현관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

도어록에는 외부에서 강제로 침입한 흔적이 없었다. 문틈에 끼워둔 머리카락도 떨어지지 않은 채 그대로 붙어 있었다.

창문 역시 잠겨 있었다.

그러나 민지는 방 안에 없었다.

전날 밤 사용했던 스마트폰은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배터리는 거의 방전되어 있었지만 통화나 신고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다.

침대 밑에서 울렸다는 폴더폰도 발견되지 않았다.

암막 커튼은 활짝 열려 있었다.

커튼을 고정했던 집게 하나는 침대 옆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아래쪽을 막아둔 상자는 방 한가운데까지 밀려 나와 있었다.

침대 밑에는 먼지가 얇게 쌓여 있었다.

그 위에서 낯선 발자국이 발견됐다.

민지의 것보다 훨씬 큰 맨발 자국이었다.

발자국은 침대 가장 깊은 곳에서 시작해 암막 커튼 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이상한 점은 방 안으로 들어온 발자국이 없었다는 것이다.

침대 밑에서 밖으로 나온 흔적만 있었다.

마치 그 사람이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건물의 복도 CCTV도 확인했다.

민지가 퇴근해 방으로 들어간 뒤 새벽까지 3층을 오간 사람은 없었다. 새벽 2시 17분쯤 복도 센서등이 한 번 켜졌지만, 화면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민지의 현관문도 열리지 않았다.

경찰은 삭제된 SNS 사진들을 다시 조사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더욱 섬뜩한 사실이 드러났다.

민지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다고 했던 첫 번째 사진 속 골목은 자취방 건물 뒤편의 좁은 통로였다.

녹슨 배관에 감겨 있던 붉은 테이프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두 번째 사진의 창문 없는 방은 건물 지하의 폐쇄된 보일러실이었다.

세 번째 사진의 낡은 계단은 지하에서 1층 뒤편으로 연결되는 비상계단이었다.

사진 속 장소들은 무작위로 선택된 공간이 아니었다.

건물 뒤편 골목에서 지하 보일러실을 지나 비상계단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경로였다.

사람들의 눈을 피한 채 누군가를 건물 밖으로 데리고 나갈 수 있는 길이었다.

그제야 경찰은 사진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 사진들은 민지가 끌려간 뒤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오래전부터 계획해 둔 이동 경로를 민지의 얼굴로 미리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이 찍힌 장소는 민지의 방이었다.

온라인 계정은 민지를 찾아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범인은 이미 그녀가 어디에 사는지 알고 있었다.

계정은 그녀가 언제 겁을 먹는지, 언제 경찰에 신고하는지, 언제 창문을 가리는지 지켜보기 위한 창구였다.

특히 매일 밤 12시에 사진을 보낸 이유도 뒤늦게 드러났다.

그 시간마다 민지는 휴대전화 화면을 확인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화면 불빛에 드러난 민지의 얼굴을 어둠 속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에필로그

민지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그녀에게 사진을 보낸 계정들도 모두 사라졌다.

몇 달 뒤 원룸은 내부 공사를 거쳐 다시 임대 매물로 나왔다. 집주인은 침대와 커튼을 모두 치웠고, 벽지를 새로 바르고 도어록도 교체했다고 한다.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온 첫날 밤.

그는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자정이 되자 모르는 계정에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프로필 사진도 없고 게시물도 없는, 숫자로만 이루어진 계정이었다.

메시지에는 글이 없었다.

사진 한 장만 첨부되어 있었다.

사진 속에는 새로 이사 온 남자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촬영 위치는 침대 바로 아래였다.

남자가 놀라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두 번째 사진이 도착했다.

이번에는 암막 커튼 안쪽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 남자의 등 뒤로 검은 천이 조금 벌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여자의 얼굴 절반이 보였다.

창백한 얼굴.

겁에 질린 눈.

사진 속 여자는 민지였다.

그때 침대 밑에서 오래된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따르릉.

따르릉.

사람들은 커튼을 닫으면 바깥에서 자신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커튼이 막아주는 것은 바깥의 시선뿐이다.

이미 그 뒤에 들어와 있는 사람까지 사라지게 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니 오늘 밤 침대 밑에서 낯선 소리가 들리더라도 곧바로 몸을 숙이지 마라.

당신이 침대 밑을 확인하는 순간,

당신의 등은 커튼을 향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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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a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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