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여줘, 그래야 네가 살아” 사랑한 여인의 정체는 호랑이였다 | 삼국유사, 김현감호, 괴담
1. 서라벌의 밤과 뜻밖의 만남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 신라의 수도 서라벌, 해가 지면 암흑으로 변하던 시대였습니다. 어느 깊은 밤, 평범한 청년 김현은 흥륜사라는 절에서 홀로 탑을 돌며 소원을 빌고 있었습니다.
밤이 깊어 참배객들이 모두 떠나가고 등불만 바람에 흔들릴 무렵, 김현은 가벼운 옷자락 소리와 함께 누군가 자신과 함께 탑을 돌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그곳에는 달빛을 머금은 아름다운 여인이 서 있었습니다. 그녀의 눈빛 속에는 깊은 슬픔이 서려 있었고, 두 사람은 말없이 마주치고 지나치며 밤새도록 탑을 돌았습니다. 김현은 그녀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고, 새벽이 다가와 돌아가려는 여인을 배웅하겠다며 막무가내로 따라나섰습니다.
2. 사람이 아닌 자들의 길
절을 벗어나 숲길로 들어서자 세상의 온기는 사라지고 음산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김현이 인적 없는 깊은 산속까지 따라오자 여인은 “이 길은 위험하니 돌아가라”고 경고했지만, 사랑에 눈이 먼 김현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외딴집은 기묘할 정도로 고요했습니다. 여인은 김현을 집 안 깊숙한 곳에 숨기며 “곧 오라비들이 돌아오니 절대 소리를 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잠시 후, 땅을 짓누르는 거대하고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비린 짐승의 냄새가 문틈으로 밀려들었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선 여인의 오라비들은 평범한 인간이 아닌 산의 주인, 바로 호랑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사방의 냄새를 맡으며 낮게 으르렁거렸습니다.
“사람 냄새가 난다.”
김현은 공포에 질려 숨조차 쉬지 못했습니다.
3. 드러난 정체와 잔인한 약속
그때 하늘에서 거대한 호통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여인의 호랑이 형제들이 그동안 인간을 너무 많이 해친 죄로, 셋 중 하나는 반드시 죽음으로 죄값을 치러야 한다는 하늘의 심판이었습니다. 포악하던 호랑이들이 운명 앞에 겁에 질려 떨자, 여인이 조용히 앞으로 나서며 오라비들을 대신해 자신이 죄값을 치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오라비들이 물러간 후, 여인은 숨어 있던 김현 앞에 나타나 눈물을 흘리며 고백했습니다.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녀는 자신이 괴물이지만 김현을 해치고 싶지 않았고, 보내야 하는 줄 알면서도 사랑하는 마음을 멈출 수 없었다며 서글프게 울었습니다. 그리고 김현에게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제안을 건넸습니다. 내일 자신이 호랑이의 모습으로 성안에 들어가 소동을 피울 테니, 김현이 직접 무기를 들고 와 자신을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왕이 호랑이를 잡는 자에게 큰 상과 벼슬을 내릴 것이니, 자신의 죽음으로 김현이 성공하여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지막 선물이자 희생이었습니다. 김현은 함께 도망치자며 거절했지만, 여인은 인간과 짐승의 경계선에서 자신에게 허락된 길은 여기까지라며 “나를 잊지 말고 넋을 기려달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4. 무너진 영웅
다음 날 정오, 여인의 말대로 서라벌 성 한복판에 거대한 호랑이가 나타나 거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호랑이를 잡는 자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는 왕명이 떨어졌고, 김현은 떨리는 손으로 무기를 든 채 군중 앞으로 나섰습니다.
골목 끝에서 마주한 호랑이에게선 어젯밤 여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오직 눈빛만은 슬프고 조연했던 그 여인의 눈 그대로였습니다. 호랑이는 김현을 향해 공격하는 대신, 어서 약속을 완성하라는 듯 천천히 다가왔습니다. 김현은 눈물을 머금고 무기를 휘둘렀고, 호랑이는 그 자리에 쓰러져 숨을 거두었습니다.
온 성안의 사람들은 공포의 맹수를 찌른 김현을 향해 영웅이라며 환호했고 그에게 높은 벼슬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눈에 영웅이 된 김현은 평생 단 한 번도 웃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기를 칭송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자신에게 죽음을 부탁하던 여인의 눈을 떠올렸습니다. 김현은 후일 그녀의 마지막 소원대로 깊은 숲속에 절(호원사)을 세웠고, 평생 동안 호랑이 여인의 슬픈 넋을 위로하며 기도를 올렸습니다.
참고 자료
김현이 호랑이 처녀를 만나 결연하게 되고, 이에 호랑이 처녀가 자신의 몸을 희생해 보은하는 내용의 설화.
역사
11세기경 『수이전(殊異傳)』에 실렸다고 하며 전해지는 최초의 기록은 13세기 『삼국유사(三國遺事)』이다.
줄거리
김현이 탑돌이를 하다가 처녀를 만나 정을 통하였는데, 처녀는 인간이 아닌 호랑이였다. 김현이 처녀의 오빠들(호랑이)에게 목숨을 위협받자 처녀가 김현을 구했다. 처녀는 고의로 사람들을 해칠 테니, 오빠들 대신 자신을 죽이고 절을 세워 주기를 청한다. 성 안에 호랑이가 나타나 김현이 호랑이를 잡으려 하니 호랑이가 어제의 그 처녀로 변했다. 처녀는 다친 사람에게 흥륜사의 장을 바르고 나발소리를 들려줄 것을 부탁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현은 벼슬길에 올라 절을 지어 호원사(虎願寺)라 하고 죽을 때에 이 이야기를 전하였다.
변이
『삼국유사』에 김현감호와 함께 수록된 <신도징(申屠澄)설화>는 신도징이 호랑이 처녀와 결연을 맺지만 아내가 견디지 못하고 도망갔다는 이야기이다. 『보한집(補閑集)』에도 스님에게 못된 형 대신 자신이 죽기를 간청한 호랑이 소년이 인간으로 환생하여 스님이 되는 호승 설화가 전한다. 변이형 모두 인간과 이물의 만남이나 결연이 나타나는 점은 같다. 『한국구비문학대계』의 변이형에서는 불법(佛法)보다 연애 모티프가 강조된다.
분석
동물이 인간으로 변신하거나 동물과 인간이 결연하는 환상적 주제를 담은 이야기로 해석된다. 또한 불교적 영험을 드러내기 위한 신성한 이야기로도 해석된다. 왕권과 왕권에 저항하는 세력들을 상징하는 일종의 은유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특징
교류할 수 없는 이물과의 소통, 동물의 자기희생, 이를 기리기 위한 절의 창건을 통해 환상적 설화가 불교적으로 마무리되는 양상을 보여 준다.
의의
동물이 인간으로 ‘변신’하는 것과, 이물과의 결연을 ‘욕망’하는 것이 환상성을 구성하는 주요한 두 가지 요소가 된다. 구분되어야 할 인간과 동물이 미분화된 상태로 결연하고자 하나 결국 갈등의 단초가 된다. 초기의 전기소설들이 이와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주제론적인 연구가 가능하다.
출처
大東韻府群玉, 三國遺事, 補閑集,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1988) 7-2, 701; 7-3, 588; 8-1, 51.
참고문헌
김현감호를 통해 본 전기소설의 형성과정과 그 특징(류준경, 고소설연구30, 한국고소설학회, 2010), 김현감호설화의 소설적 변용 연구(방민화, 문학과종교14, 한국문학과종교학회, 2009), 김현감호설화의 연구(임재해, 한국민속학17, 한국민속학회, 1984), 김현감호의 환상적 주제(송효섭, 국어국문학95, 국어국문학회, 1986), 민족설화의 논리와 의식(임재해, 지식산업사, 1992), 설화와 민중의식(조동일, 정음사, 1985), 조선조 애정 전기소설의 소설시학 연구(이정원, 서강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3), 한국 고설화론(김현룡, 새문사, 1984), 한국 설화문학 연구(소재영, 숭실대학교출판부, 1984).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김현감호(金現感虎)
신라의 풍속에 매해 중춘(仲春)에 이르러 초8일부터 15일까지 도성의 남자와 여자들이 흥륜사(興輪寺)註 177의 전탑(殿塔)을 다투어 돌면서 복회(福會)註 178로 삼는다. 원성왕대 낭군(郎君)註 179 김현(金現)이라는 자가 밤이 깊도록 홀로 쉬지 않고 돌고 있는데 한 처녀가 염불하며 따라 돌았고, 서로 마음이 맞아 눈길을 보냈다. 돌기를 마치자 가려진 곳으로 이끌고 들어가 통정하였다. 처녀가 장차 돌아가려고 하자 김현이 그를 따라갔다.
처녀가 사양하고 거절하였으나 억지로 따라가서 서산(西山)註 180의 기슭에 이르러 한 초가집으로 들어가니 어떤 노파가 처녀에게 묻기를 “데리고 온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라고 하였다. 처녀가 그 사정을 이야기하니 노파가 말하기를 “비록 좋은 일이지만 없는 것만 못하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이니 나무랄 수 없다. 또 은밀한 곳에 숨겨라. 너의 형제가 미워할까 두렵다”라고 하였다. 김현을 데리고 구석진 곳에 숨겼다. 잠시 후 세 호랑이가 포효하면서 들어와서 사람의 말을 만들어서 “집에 비린내가 난다. 요깃거리가 있으니 어찌 다행이 아닌가”라고 하였다. 노파와 처녀가 꾸짖어서 “너의 코는 좋기도 하구나. 어찌 미친 말을 하는가”라고 하였다. 이때 하늘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어 “너희들은 만물의 목숨을 즐겨 해치는 것이 매우 많다. 마땅히 하나를 죽여서 악행을 징계할 것이다”라고 하니 세 호랑이가 그것을 듣고 모두 걱정하는 빛이 있었다. 처녀가 일러 말하기를 “세 오빠가 만약 멀리 피하고 스스로 뉘우칠 수 있다면 내가 그 벌을 대신 받겠다”라고 하니 모두 기뻐하며 머리를 숙이고 도망가 버렸다.
처녀가 들어와 낭군에게 일러 말하였다. “처음에 저는 낭군이 우리 집에 욕되이 오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 고로 사양하고 막았습니다. 지금 이미 숨김이 없이 속마음을 펼치겠습니다. 또한 천첩은 낭군에게 비록 같은 종족은 아니라 하겠지만 하룻밤의 즐거움을 같이 할 수 있었으니 의(義)가 중하여 혼인의 즐거움을 맺었습니다. 세 오빠의 악행은 하늘에서 이미 미워하여 한 집안의 재앙이 되었고 저는 그것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그 죽음을 상관없는 사람의 손에 주는 것이 어찌 낭군의 칼 아래에 엎드려서 은혜를 보답하는 덕과 같겠습니까. 저는 내일 저자에 들어가서 사람을 심하게 해칠 것입니다. 그러면 국인이 나를 어찌할 수 없어 대왕이 반드시 높은 관작을 가지고서 사람을 모아 나를 잡게 할 것입니다. 낭군은 그것을 겁내지 말고 성 북쪽의 숲속으로 나를 쫓아오면 내가 장차 그것을 기다리겠습니다.” 김현이 말하였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귀는 것은 인륜의 도리이나 다른 류와 사귀는 것은 대개 떳떳한 것이 아니다.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진실로 천행(天幸)이 많은 것인데 어찌 차마 항려(伉儷)의 죽음을 팔아 한 세상의 벼슬을 바라겠는가.” 처녀가 말하였다. “낭군은 그 같은 말을 하지 마십시오. 지금 저의 일찍 죽음은 대개 하늘의 명령이고, 또한 내가 바라는 것이고, 낭군의 경사이고, 우리 일족의 복이자 국인의 기쁨입니다. 한 번 죽어 다섯 가지 이로움을 갖추는 것이니 어찌 그것을 거역하겠습니까. 다만 저를 위하여 절을 짓고 불경을 강론하여 좋은 과보(果報)를 얻는데 도움이 되게 해 주신다면 즉 낭군의 은혜가 이보다 더 큰 것이 없겠습니다.” 마침내 서로 울면서 헤어졌다.
다음날 과연 사나운 호랑이가 성안에 들어왔는데, 사나움이 심하여 감히 당할 수 없었다. 원성왕이 그것을 듣고 명령을 내려 이르기를 “호랑이를 감당하는 사람에게 2급의 작(爵)을 주겠다”고 하였다. 김현이 대궐에 나아가 “소신이 할 수 있습니다”라고 아뢰니 이에 왕이 먼저 관작을 주고서 그를 격려하였다. 김현이 칼을 쥐고 숲속으로 들어가니, 호랑이는 변하여 낭자(娘子)가 되어 반갑게 웃으면서 말했다. “어젯밤에 낭군과 함께 마음속 깊이 맺던 일을 오직 그대는 잊지 마십시오. 오늘 내 발톱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모두 흥륜사의 간장을 바르고 그 절의 나발(螺鉢) 소리를 들으면 곧 나을 것입니다.” 이에 김현의 찬 칼을 취해 스스로 목을 찔러 쓰러지니 바로 호랑이었다. 김현이 숲을 나와 기탁하여 말하기를 “지금 이 호랑이는 쉽게 잡았다”라고 하였다. 그 연유는 숨겨 새어나가게 하지 않고 단지 그 말에 따라서 치료하였다. 그 상처는 모두 나았다. 지금 민가에서는 또한 그 방법을 쓴다.
김현은 벼슬에 오르자, 서천(西川) 가에 절을 지어 호원사(虎願寺)註 181라 하고 항상 ≪범망경(梵網經)≫註 182을 강론하여서 호랑이의 저승길을 인도하고 또한 호랑이가 그 몸을 죽여 자기를 성공하게 해 준 은혜에 보답했다. 김현은 죽기 전에 지난 일의 기이함에 매우 감동하여 이에 붓으로 써서 전(傳)을 완성하여 세상에서 비로소 듣고 알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논호림(論虎林)≫註 183이라 이름하였고, 지금도 그렇게 일컫는다.註 184
註) 177
신라의 불교전래 및 공인과정과 연관되어 가장 일찍 국가적 사찰로 창건되었고 신라 왕경 내 칠처가람(七處伽藍)터 중의 하나인 천경림(天鏡林)에 건립되었다.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온 최초의 승려 阿道가 창건한 사찰이라 전하며 법흥왕 14년 이차돈의 순교와 함께 신라의 대가람으로 중창되어 544년(眞興王 5년)에 완공되었다. 흥륜사는 대법회를 주관하는 도량으로서, 왕실과 국가의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영험의 가람으로 존중되기도 하였다(강인구·김두진·김상현·장충식·황패강, ≪역주 삼국유사≫Ⅰ, 이회문화사, 2002, 266쪽).바로가기
註) 178
福을 빌기 위한 모임으로, 신라에서 복회가 시작된 확실한 연대는 밝혀져 있지 않으나, 본조의 기록에 의하면 원성왕대는 이미 복회가 행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복회에 대한 것은 아니나, 탑돌이에 관한 것으로는 ≪삼국유사≫ 권4 의해5 義湘傳敎와 賢瑜珈 海華嚴條에서 확인할 수 있다(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역주 삼국유사≫, 이회문화사, 2003, 293쪽).바로가기
註) 179
일반적으로 귀공자나 他人을 존경하는 말로, 여기서는 貴人의 子弟 쯤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바로가기
註) 180
지금의 경주시 서쪽 교외에 있는 선도산, 왕녀봉 등을 가리킨다. 뒤에 나오는 西川은 서산의 東麓을 北流한다.바로가기
註) 181
경상북도 경주시 황성동에 있던 절로, 양 탑지가 존재하고, 폐 탑재도 남아 있다(齋藤忠, ≪朝鮮古代文化の硏究≫, 地人書館, 1943) 이 호원사의 건립은 신라의 개인에 의한 사원건립에 관한 하나의 사료라 할 수 있다(村上四男, ≪三國遺事考証 下之三≫, 塙書房, 1995, 106쪽). 한편 개인에 의한 사원건립의 기록은 善德女王~眞德女王代를 전후로 다수 확인된다.바로가기
註) 182
본 경전은 ≪梵網菩薩戒經≫이라고도 하는데, 정확히는 ≪梵網經盧舍那佛說菩薩心地法門品≫이다. 서문에 의하면 이 경의 이름은 범망경의 廣本 중에서 제10 菩薩心地戒品 하나만을 따로 떼어 내서 별도의 경을 이루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 한다. 본 경전은 대장경에서는 대승 율부에 속해있는데, 대승보살계의 근본성전으로 유명하다. 경전명의 범망이라는 것은 여러 부처들이 중생들의 根機에 따라 설하고 병에 따라 약을 주되, 하나도 빠짐이 없는 것이 梵天인 인다라의 그물과 같다는 뜻이다. 본 경전은 설법의 모습이 ≪華嚴經≫과 통하는 점이 있기 때문에 옛부터 화엄의 마무리가 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특히 하권에 설해진 大乘戒가 중요하며 이 계를 범망계라고 부른다. 그 특징은 계를 받는 데에 재가자와 출가자의 구분이 없다는 것과 자신의 불성을 계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佛性戒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은 구마라습이 역경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근래에는 5세기에 중국에서 찬술된 僞經으로 간주되고 있다(大野法道, ≪大乘戒經の硏究≫, 1963, 164~165, 274~283쪽). 신라에는 ≪梵網經≫에 대한 주석서가 비교적 많았지만, 이들 주석서 가운데 元曉와 義寂, 勝莊, 太賢의 것이 남아서 전해지고 있다. 신라 승려들의 특정 경론에 대한 여러가지 주석서가 오늘날까지 동시에 전해지고 있는 예가 흔하지 않은 상황에서 ≪범망경≫에 대한 4종의 주석서가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더구나 ≪범망경≫은 승단이나 신도들의 일상생활을 규정하고 있는 戒經이라는 점에서 이에 관한 주석서에는 당시 신라의 상황을 반영한 해석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신라에는 ≪범망경≫과 관련한 보살계의 내용이 圓光의 시기부터 찾아지고 있으며 그 구체적 經名이 남아있는 경우는 선덕왕대 활동한 圓勝의 시기부터이므로 신라에서는 대체적으로 7세기 전반에 ≪범망경≫의 유입이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최원식, ≪신라보살계사상사연구≫, 민족사, 1999, 48쪽).바로가기
註) 183
이와 관련한 기록으로는 ≪勝覽≫에 虎願寺 緣起說話인 ≪論虎藪」, 閔周冕이 편찬한 ≪東京雜記≫, 崔滋의 ≪補閑集≫ 등에 비슷한 유형의 설화가 실려있다. 민주면의 ≪동경잡기≫는 본 기록과 동일한 것으로 보아 본서를 근거로 한 것임을 알 수 있다(윤미경, 「호원사연기설화연구」, 동국대석사학위논문, 1992) 한편 權文海가 조선 선조 때 지은 ≪大東韻府群玉≫에는 “虎願”이라는 제목 하에 본문의 내용을 요약한 형태로 기록이 전해지고 있는데 여기에는 그 출전을 ≪新羅殊異傳≫으로 밝히고 있다(임갑랑, ≪“김현감호”의 갈등구조와 죽음의 의미」, ≪계명어문학≫ 5, 1990, 195쪽).바로가기
註) 184
≪삼국유사≫에서 호랑이가 설화적 대상으로 그려지는 것은 2~3사례 정도인데 모두 여성적 존재라는 특징이 나타난다. 그런데 민간설화에서 전래되는 호랑이와 관련된 이야기 속에는 호랑이가 변하여 여성으로 된 경우가 많다. 이는 ≪삼국유사≫의 설화적 구성체계와 민간전승의 그것이 같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손진태는 “조선 민간신앙에서 川海神의 性은 분명하지 않다. 龍王이라 하므로 중국식인 왕이라면 남성일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고유 신앙으로는 어떠한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산신은 호랑이를 탄 노인으로, 산신당의 벽에 걸려있는 많은 화상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그런데 문헌에 의하면 고유산신은 여성이었음을 알 수 있고, 민간신앙 중에서도 최초의 산신이 여성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많은 證跡이 있다.”고 한 바 있다(손진태(저)·최광식(역), ≪조선상고문화의 연구≫, 고려대학교 박물관, 2002, 106~118쪽).
출처: 한국고대사료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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