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더기가 기어 나온 지하 만화가게
책장 뒤에서 한 달 동안 썩고 있던 여자
“아저씨.”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짜장면이 숨을 쉬어요.”
성호가 고개를 들었을 때, 아이는 젓가락을 든 채 굳어 있었다.
검은 짜장 소스 위에서 하얀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잘게 끊어진 면발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들은 면이 아니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구더기 수십 마리가 서로의 몸을 밀어내며 그릇 밖으로 기어 나오고 있었다.
그날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짜장면에서 벌레가 나온 줄 알았다.
아무도 몰랐다.
그것들이 음식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구더기들은 가게 가장 안쪽의 책장 뒤에서부터 기어오고 있었다.
그곳에는 한 달 전 실종된 여자가 웅크린 채 썩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죽인 남자는 그날도 손님인 척 가게 안에 앉아 있었다.
제1장|전 주인이 사라진 가게
아직 동네마다 만화대여점이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의 오래된 상가 지하 1층에 작은 만화가게가 하나 있었다.
도로에서는 간판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열두 칸 내려가야 녹색 유리문이 나타났다.
비가 오는 날이면 계단 벽을 타고 물이 흘렀다. 여름에도 지하 공기는 서늘했고, 콘크리트 바닥은 늘 축축했다.
가게 안에는 창문이 없었다.
환풍기 한 대와 천장에 달린 형광등 여섯 개가 전부였다. 형광등 두 개는 수명이 다했는지 가끔 혼자 깜빡였다.
사방에는 만화책이 가득했다.
책장은 천장 가까이까지 올라가 있었고, 한 권이라도 더 꽂기 위해 벽에 바짝 붙여놓았다. 공간이 부족한 곳에는 책장을 앞뒤로 겹쳐 설치했다.
새 주인 성호는 퇴직금과 대출을 보태 가게를 인수했다.
성호라는 이름은 편의를 위해 붙인 것이다.
서른여섯 살이었던 그는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은 뒤 생계를 위해 만화가게를 선택했다.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혼자 운영할 수 있고, 오래된 단골도 많다는 건물주의 말을 믿었다.
가게의 책과 집기, 대여 장부까지 모두 넘겨받았다.
전 주인은 이십 대 후반의 여자였다고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을 끊고 사라졌다고 했다.
건물주는 혀를 차며 말했다.
“한 달 월세도 안 내고 도망갔어요. 가게고 물건이고 전부 내버려두고. 요즘 젊은 사람들은 책임감이 없다니까.”
가게에는 전 주인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계산대 밑에는 분홍색 슬리퍼가 있었고, 서랍 안에는 립밤과 손거울이 들어 있었다. 싱크대 선반에는 반쯤 마신 인스턴트커피가 굳어 있었다.
달력에는 사라지기 전날까지 대여료와 반납 예정일이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다음 날부터 글씨가 뚝 끊겼다.
성호는 물건을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 언젠가 전 주인이 돌아오면 돌려줄 생각으로 종이상자에 모아두었다.
다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가게 안에서 냄새가 났다.
처음에는 오래된 책 냄새라고 생각했다.
눅눅한 종이, 곰팡이, 식은 라면 국물과 배수구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그런데 영업을 마치고 환풍기를 끄면 그 아래에서 다른 냄새가 올라왔다.
상한 고기처럼 비리고, 지나치게 단 냄새였다.
한 번 맡으면 목구멍 안쪽에 달라붙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성호는 싱크대에 락스를 붓고 배수구 덮개도 교체했다. 방향제를 여러 개 놓았지만 냄새는 없어지지 않았다.
냄새는 언제나 가장 안쪽 책장 주변에서 짙어졌다.
건물주는 지하라서 어쩔 수 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전에 장사하던 여자도 냄새 난다고 했어요. 하수구 문제겠죠.”
성호도 그렇게 믿으려 했다.
사람은 설명할 수 없는 냄새보다 익숙한 변명을 더 쉽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제2장|회색 점퍼를 입은 남자
가게에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찾아오는 남자가 있었다.
마른 체격에 키가 큰 남자였다. 날씨가 따뜻한데도 목까지 올라오는 회색 점퍼를 입고 다녔다.
남자는 늘 저녁 8시 40분쯤 들어왔다.
인사도 하지 않고 가장 안쪽으로 걸어가, 문제의 책장과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만화책을 펼치기는 했지만 페이지를 거의 넘기지 않았다.
책을 읽기보다는 책장 쪽을 지켜보는 사람처럼 보였다.
성호가 대여 여부를 물으면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보고 갈게요.”
그는 20분 정도 머물다가 정확히 밤 9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에는 전 주인 때부터 다니던 단골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성호가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전 사장님하고도 아는 사이셨어요?”
남자의 손이 멈췄다.
그는 펼쳐놓은 만화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몇 번 봤죠.”
“갑자기 연락이 안 된다던데 무슨 일인지 모르시죠?”
그제야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성호가 아니라 성호 뒤쪽의 책장을 향하고 있었다.
“사람이 사라질 때 이유를 말하고 사라지지는 않잖아요.”
남자는 그렇게 말한 뒤 책을 덮었다.
그리고 계산대를 지나가다가 잠깐 멈췄다.
“저 안쪽 책장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요.”
“왜요?”
“오래돼서 위험해 보이니까요. 넘어지면 사람 하나쯤은 깔리겠어요.”
말투는 친절했지만 성호는 이상하게 불쾌했다.
자신이 가게를 인수한 뒤 저 책장을 옮겨보려고 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제3장|짜장면이 숨을 쉬어요
첫 번째 사건은 토요일 오후에 벌어졌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가게에 몰려왔다. 책을 펼쳐놓고 컵라면을 먹는 아이도 있었고,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킨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이 짜장면을 거의 다 먹었을 때였다.
구석에 앉아 있던 남자아이가 젓가락을 멈췄다.
“아저씨, 면이 움직여요.”
성호는 아이들이 장난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릇을 확인하는 순간 얼굴이 굳었다.
검은 소스 안에서 구더기들이 몸을 뒤틀고 있었다.
아이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그릇을 밀쳤다. 짜장면이 바닥에 엎어졌고 구더기들이 소스 밖으로 흩어졌다.
성호는 즉시 중국집에 전화했다.
그러나 중국집 주인은 자기들 음식에서 그런 것이 나올 리 없다며 화를 냈다.
“배달할 때까지 멀쩡했습니다. 가게 위생부터 확인하세요.”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겼다.
성호는 아이들에게 돈을 돌려주고 바닥을 닦았다. 구더기를 휴지로 모아 비닐봉지에 넣고 입구를 단단히 묶었다.
그때 건물주가 월세를 받으러 내려왔다.
성호가 막 돈을 건네려던 순간이었다.
탁.
여자아이 한 명이 읽고 있던 만화책을 내던졌다.
“책에도 있어요!”
펼쳐진 책의 가운데 접힌 부분에서 구더기들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종이 사이에 눌려 있던 벌레들이 빛을 피해 페이지 아래로 파고들었다.
건물주는 책을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청소를 어떻게 하는 겁니까? 애들 먹는 데서 이런 게 나오면 장사를 하겠어요?”
“저 매일 청소합니다. 음식에서도 나오고 책에서도 나오면 뭔가 이상하잖아요.”
“지하가 습해서 그런 거겠죠. 살충제나 제대로 뿌리세요.”
건물주는 성호의 설명을 듣지 않고 계단을 올라갔다.
회색 점퍼의 남자는 그날도 가게 안쪽에 앉아 있었다.
소란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성호가 구더기를 치우고 있는데 남자가 조용히 말했다.
“오래된 책에는 별게 다 생깁니다.”
성호는 고개를 들었다.
남자의 시선은 구더기가 발견된 책이 아니라, 그 책이 꽂혀 있던 책장 뒤쪽을 향하고 있었다.
제4장|대여해 간 책에서 나온 것
사흘 뒤, 한 학부모가 가게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왔다.
여자는 만화책 한 권이 담긴 투명 비닐봉지를 계산대 위에 내던졌다.
“가게 관리를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봉지 안쪽에는 구더기 여러 마리가 붙어 있었다.
“아이가 이 책을 방에 놔뒀는데, 아침에 보니까 책상이며 바닥이며 벌레투성이였어요. 온 집 안에 다 퍼졌다고요.”
성호는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대여료를 돌려주고 소독 비용도 부담하겠다고 약속했다.
여자가 돌아간 뒤 그는 출입문을 잠그고 모든 책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안쪽 책장의 책을 뽑자 표지 뒤에서 구더기 두 마리가 떨어졌다.
옆 책을 뽑으니 다섯 마리가 나왔다.
그다음 책에서는 셀 수도 없이 많은 구더기가 쏟아졌다.
책 자체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책의 앞쪽은 깨끗했다. 구더기는 모두 뒤표지와 책등 근처에 몰려 있었다.
성호는 책장을 들여다보았다.
벽과 책장 사이의 검은 틈에서 구더기 한 마리가 천천히 기어 나왔다.
그제야 냄새의 방향도 분명해졌다.
썩은 냄새는 책장이 아니라 책장 뒤에서 나고 있었다.
성호는 책을 모두 빼낸 뒤 책장을 당겼다.
움직이지 않았다.
바닥에 고정된 것처럼 단단했다.
발로 아래쪽을 밀어보았지만 책장은 작은 진동만 낼 뿐이었다.
그때 뒤쪽에서 소리가 났다.
사각.
성호는 움직임을 멈췄다.
마른 나무를 손톱으로 긁는 듯한 소리였다.
사각.
사각.
쥐라고 생각했다.
성호는 책장 옆면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쿵.
긁는 소리가 멈췄다.
“쥐가 있나?”
혼잣말을 하고 돌아서는데 다시 소리가 들렸다.
사각.
이번에는 조금 위쪽이었다.
마치 책장 뒤에 웅크리고 있던 무언가가 성호의 움직임을 따라 천천히 몸을 일으킨 것 같았다.
성호는 휴대전화 손전등을 켜 틈으로 비췄다.
검은 공간만 보였다.
그런데 빛을 움직이던 순간, 안쪽에서 희고 둥근 것이 잠깐 드러났다.
사람의 손가락처럼 보였다.
성호가 다시 빛을 비추자 아무것도 없었다.
제5장|성냥불이 비춘 얼굴
그날 저녁에도 몇몇 아이가 가게에 남아 텔레비전으로 야구 경기를 보고 있었다.
밤 8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
형광등이 두어 번 깜빡였다.
파직.
텔레비전과 조명이 동시에 꺼졌다.
창문이 없는 지하는 순식간에 완전한 어둠에 잠겼다.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성호는 계산대 서랍을 더듬어 성냥갑을 찾았다. 손에 잡히는 성냥 하나를 꺼내 그었다.
치익.
붉은 불꽃이 살아났다.
작은 불빛이 성호의 손과 얼굴을 비추고, 흔들리는 그림자를 벽 위에 만들었다.
책장과 의자, 겁먹은 아이들의 얼굴이 차례로 드러났다.
그때 여자아이 한 명이 성호의 뒤를 바라보며 입을 벌렸다.
비명은 나오지 않았다.
아이는 목소리를 잃은 사람처럼 입만 움직였다.
성호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의 바로 옆에 여자가 서 있었다.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젊은 여자였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은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었다. 한쪽 팔은 몸 옆으로 축 늘어져 있었고, 손끝에서는 검고 끈적한 액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뚝.
뚝.
성냥불이 흔들리자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 한쪽이 검게 무너져 있었다.
부패해 갈라진 피부 사이로 하얀 구더기들이 움직였다. 입술은 거의 사라져 있었고, 드러난 잇몸 사이로 검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여자의 눈동자가 성호를 향했다.
그러나 여자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성호가 아니었다.
가장 안쪽 책장이었다.
그 순간 성냥불이 꺼졌다.
아이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잠시 후 형광등이 켜졌다.
여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바닥에도 검은 액체는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여자아이의 흰색 소매에는 누군가 젖은 손으로 붙잡았던 것처럼 다섯 개의 갈색 자국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가게 안에는 전보다 훨씬 짙은 부패 냄새가 퍼져 있었다.
회색 점퍼의 남자는 그날 밤 나타나지 않았다.
제6장|“뭘 보셨어요?”
며칠 뒤 성호는 마지막 손님을 내보낸 뒤 혼자 가게를 정리하고 있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출입문을 잠그고 형광등을 하나씩 껐다.
계산대 위의 작은 조명만 남겨둔 채 매출을 정리하는데 가게 안쪽에서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사락.
성호는 고개를 들었다.
“누구 있어요?”
대답은 없었다.
사락.
누군가 천천히 만화책 한 장을 넘기는 소리였다.
성호는 빗자루를 들고 책장 사이로 들어갔다.
양쪽으로 솟은 책장 때문에 통로는 좁고 길었다. 꺼진 형광등 아래의 천장은 보이지 않았다.
통로 끝에 여자가 서 있었다.
하얀 블라우스.
젖은 머리카락.
여자는 등을 보인 채 가장 안쪽 책장에 이마를 대고 있었다.
사각.
여자의 손이 책장 뒤판을 긁고 있었다.
사각.
사각.
“누구세요?”
긁는 소리가 멈췄다.
여자의 고개가 움직였다.
몸은 책장을 향한 채 목만 천천히 뒤로 돌아왔다.
성호는 비명을 지르지도 못했다.
여자의 눈꺼풀은 검게 내려앉아 있었지만 그 안쪽의 두 눈은 분명히 성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검은 입 안에서 낮은 바람 소리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기 있어요.”
여자가 책장을 가리켰다.
그리고 책장 뒤에서 무언가가 세게 부딪혔다.
쿵.
쿵.
쿵.
마치 갇힌 사람이 밖으로 내보내 달라고 두드리는 소리였다.
성호는 빗자루를 떨어뜨리고 계단으로 달아났다.
밖으로 뛰쳐나오자 차가운 밤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그런데 길 건너편 가로등 아래에 누군가 서 있었다.
회색 점퍼의 남자였다.
남자는 담배를 피우며 성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급하게 나오세요?”
성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남자가 천천히 길을 건너왔다.
“뭘 보셨어요?”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성호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가 아니었다.
‘무슨 소리를 들었느냐’도 아니었다.
남자는 분명히 물었다.
뭘 보았느냐고.
성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남자는 잠시 성호의 얼굴을 살피더니 웃었다.
“잘하셨어요.”
“뭘요?”
“그 책장 안 건드린 거요.”
남자는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린 뒤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그날 밤 성호는 가게로 돌아가지 않았다.
제7장|피를 흘리는 만화책
다음 날 아침, 성호는 건물주를 불렀다.
밤에 본 여자와 책장 뒤에서 들린 소리, 회색 점퍼 남자의 말을 모두 설명했다.
하지만 건물주는 짜증부터 냈다.
“귀신 타령하려고 부른 겁니까? 장사가 안되면 다른 핑계를 대세요.”
그때 가게 안에서 비명이 들렸다.
만화책을 반납하러 온 여고생이 책장 앞에 서 있었다.
여학생의 손에 만화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표지 아래쪽에서 검붉은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처음에는 피처럼 보였다.
하지만 냄새가 달랐다.
뜨거운 날 쓰레기통 안에서 고기가 썩을 때 나는 것보다 훨씬 달고 무거운 냄새였다.
성호는 책을 받아 펼쳤다.
액체는 책 위에 묻은 것이 아니었다. 뒤표지와 책등을 통해 안쪽으로 스며들어 페이지 전체를 적시고 있었다.
성호는 책이 꽂혀 있던 자리를 확인했다.
책장 뒤판에도 검붉은 얼룩이 번져 있었다.
그 액체는 피가 아니었다.
책장 뒤에서 흘러나온 부패액이었다.
성호는 주변 책을 전부 끌어냈다.
책을 꺼낼수록 악취가 짙어졌다. 구더기들이 책장 틈을 따라 쏟아져 나왔다.
건물주도 마침내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은 사람을 더 불러 무거운 책장을 조금씩 앞으로 당겼다.
끼익.
책장이 바닥을 긁으며 움직였다.
10센티미터쯤 틈이 벌어졌을 때 안쪽에서 파리떼가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검은 파리들이 얼굴과 천장을 향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건물주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성호는 코와 입을 막은 채 손전등을 틈 사이로 비췄다.
책장 뒤에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공간이 있었다.
벽 쪽에 검은 비닐과 낡은 이삿짐 담요가 쌓여 있었다.
담요 사이로 하얀 천이 보였다.
블라우스 소매였다.
그 끝에서 검게 변색된 손이 튀어나와 있었다.
손가락은 굽은 채 책장 뒤판에 닿아 있었다.
그리고 손톱 바로 앞의 나무에는 다섯 줄의 긁힌 자국이 남아 있었다.
성호가 밤마다 들었던 소리와 똑같은 간격이었다.
사각.
사각.
사각.
성호는 더 이상 확인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경찰에 신고했다.
제8장|벽 속의 여자
경찰이 책장을 완전히 들어낸 뒤에야 시신의 모습이 드러났다.
젊은 여자였다.
무릎을 가슴 가까이 접은 채 옆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시신은 검은 비닐과 담요로 대충 덮여 있었다.
머리 뒤쪽에는 무언가에 부딪힌 흔적이 있었다.
하얀 블라우스는 검붉게 변색되어 있었다.
블라우스 주머니에서는 주민등록증이 발견됐다.
시신은 가게의 전 주인이었다.
건물주가 월세를 내지 않고 도망갔다고 말했던 바로 그 여자였다.
그녀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자신이 운영하던 가게 안에서 한 달 동안 책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썩어가고 있었다.
경찰은 책장 뒤판의 긁힌 자국도 조사했다.
나무 틈에서는 손톱 조각으로 보이는 작은 조직이 발견됐다.
부패가 심해 정확한 판단은 어렵지만, 여자가 책장 뒤에 숨겨졌을 당시 완전히 숨이 끊어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여자는 어둡고 좁은 틈에서 한동안 정신을 되찾았을 것이다.
몸은 비닐과 담요에 눌려 있었고, 앞은 움직이지 않는 책장으로 막혀 있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책장 뒤판을 긁었을 것이다.
소리를 내려고 했을 것이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긁어도 책장은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구조 요청은 나무에 다섯 줄의 흠집으로만 남았다.
제9장|계속 찾아오던 손님
수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경찰이 전 주인의 대여 장부와 통화 기록을 확인하던 중 한 남자가 용의자로 지목됐다.
가게에 자주 드나들던 단골손님이었다.
성호는 경찰이 보여준 사진을 보는 순간 그를 알아봤다.
회색 점퍼를 입고 매일 밤 책장 앞에 앉아 있던 남자였다.
그는 전 주인을 오랫동안 혼자 좋아하고 있었다.
사건이 벌어진 밤에도 마감 시간까지 가게에 남아 있었다.
마지막 손님이 나간 뒤 남자는 여자에게 마음을 고백했다.
여자가 거절하며 나가달라고 하자 남자는 출입구를 막았다. 손목을 붙잡고 억지로 다가갔다.
여자가 그를 밀어내며 몸싸움이 벌어졌다.
뒤로 밀려난 여자의 머리가 금속 테이블 모서리에 부딪혔다.
여자는 바닥에 쓰러졌다.
남자는 곧바로 신고하지 않았다.
바닥에 주저앉아 여자의 숨이 약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붙잡힐 것이 두려워 시신을 책장 뒤의 빈 공간으로 밀어 넣었다.
그 빈 공간은 남자가 전 주인의 가게 정리를 도와주며 이미 알고 있던 곳이었다.
비닐과 낡은 담요로 여자를 덮고, 책장을 다시 벽 쪽으로 밀었다. 여자의 휴대전화와 가방을 가져간 뒤 문을 잠그고 달아났다.
건물주는 며칠 동안 연락이 닿지 않자 여자가 월세를 떼먹고 잠적한 것으로 생각했다.
실종 신고를 한 사람도 없었다.
가게는 물건과 책이 남은 상태로 성호에게 넘어갔다.
그런데 더욱 끔찍한 사실이 있었다.
남자는 범행 뒤에도 가게를 떠나지 않았다.
새 주인이 들어온 뒤 거의 매일 가게를 찾아왔다.
시신이 발각되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냄새가 얼마나 심해졌는지, 구더기가 어디까지 번졌는지, 성호가 책장을 움직이려 하지는 않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늘 앉았던 의자와 시신 사이의 거리는 불과 한 걸음 남짓이었다.
시신이 책장 뒤에서 썩는 동안 남자는 그 앞에 앉아 만화책을 펼쳐놓고 있었다.
페이지를 거의 넘기지 않았던 이유도 그제야 설명됐다.
그는 책을 읽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숨겨놓은 여자를 보러 온 것이었다.
경찰이 왜 계속 가게에 찾아갔느냐고 묻자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아직 거기 있는지 확인하려고요.”
에필로그|한 달 늦게 도착한 구조 요청
시신이 수습된 뒤 이상한 일들은 모두 멈췄다.
더 이상 책에서 구더기가 나오지 않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정전도 발생하지 않았다.
책장 뒤를 긁는 소리도 사라졌다.
성호는 다시 영업을 시작하지 못했다.
가게 안의 책을 모두 처분하고 계약을 해지했다. 지하 계단을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목구멍에 그 냄새가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호를 가장 오랫동안 괴롭힌 것은 썩은 얼굴의 여자 귀신이 아니었다.
길 건너 가로등 아래에서 담배를 피우던 남자의 얼굴이었다.
“뭘 보셨어요?”
그 남자는 성호가 무엇을 봤는지 알고 싶어 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들켰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성호는 가끔 그날 다른 대답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했다.
만약 책장 뒤에서 여자를 봤다고 말했다면.
남자가 그날 밤 순순히 돌아갔을까?
아니면 이미 한 사람을 책장 뒤에 숨긴 그가, 비밀을 알게 된 사람 하나를 더 없애려 했을까?
여자 귀신은 누구도 해치지 않았다.
아이 곁에 나타났을 때도 손을 뻗지 않았다. 성호 앞에 나타났을 때도 다가오지 않았다.
그녀는 언제나 한곳만 가리켰다.
자신이 갇혀 있던 책장이었다.
구더기는 음식에서 발견됐고, 책으로 옮겨갔으며, 마침내 시신이 숨겨진 벽까지 사람들을 이끌었다.
검붉은 부패액이 책을 적시고 나서야 사람들은 무거운 책장을 옮겼다.
어쩌면 그녀는 사람들을 겁주려 했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살아 있을 때 아무도 듣지 못한 구조 요청을 죽은 뒤에도 계속 보내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성호가 밤마다 들었던 긁는 소리는 무엇이었을까?
책장 뒤에서 죽어가던 여자의 마지막 움직임이 기억처럼 되풀이된 것일까?
아니면 시신이 발견되기를 기다리며 한 달 동안 계속 책장을 긁고 있었던 것일까?
확실한 것은 하나뿐이다.
그 지하 만화가게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썩은 얼굴로 나타난 여자가 아니었다.
사랑이라는 말로 한 사람을 붙잡고, 죽어가는 사람을 어둠 속에 밀어 넣은 뒤, 매일 그 앞에 돌아와 태연히 만화책을 펼쳤던 살아 있는 남자였다.
구더기는 죽은 것을 먹고 산다.
하지만 그 가게에서 가장 오래 썩고 있었던 것은 시신만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갑자기 사라졌는데도 아무도 찾지 않았다는 사실.
이상한 냄새가 나는데도 모두 지하라서 그렇다고 넘긴 사실.
누군가 책장 뒤에서 필사적으로 긁고 있었는데도 아무도 책장을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
그 모든 무관심이 그녀와 함께 썩고 있었다.
어떤 구조 요청은 너무 늦게 발견된다.
그리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은 소리는 사람이 죽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마침내 그 책장을 옮길 때까지,
어둠 속에서 계속된다.
사각.
사각.
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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