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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공포 이야기와 인생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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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인생 사연

나는 아내인가, 제사 음식 하는 사람인가?

By seoulaura
9월 27, 2026 8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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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무 살을 조금 넘긴 나이에 결혼했고, 서른 중반에 이혼했습니다.

첫 번째 결혼생활은 수도권 외곽의 작은 아파트에서 시작했습니다.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였고, 겨울이면 현관문 틈으로 찬바람이 들어왔습니다.

신혼 때는 그것도 좋았습니다.

퇴근길 시장에서 두부 한 모, 콩나물 한 봉지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오고, 저녁을 먹은 뒤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베란다에 빨래를 널던 평범한 생활이 오래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결혼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끝났습니다.

배신을 알게 된 뒤에는 집 안의 모든 것이 낯설어졌습니다.

같이 골랐던 식탁도, 베란다에 나란히 널어놓았던 빨래도, 아이들 학원 시간표가 붙어 있던 냉장고 문도 보기 싫었습니다.

결국 저는 도망치듯 그 결혼생활을 끝냈습니다.

그 뒤로 거의 10년을 혼자 살았습니다.

아이들과 연락하며 지냈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장을 보는 생활에도 익숙해졌습니다.

주말이면 동네 마트에서 일주일치 반찬거리를 사고, 해가 지기 전 집 근처 하천을 한 시간씩 걷기도 했습니다.

가끔 카페 창가에 앉아 부부들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다시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혼자가 편했습니다.

누구 밥 시간을 맞출 필요도 없고, 누군가 늦게 들어온다고 기다릴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살다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지인 소개였습니다.

남편 역시 혼자였습니다.

다만 저와 달리 이혼이 아니라 사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사실이 오히려 마음을 놓이게 했습니다.

‘적어도 배신 때문에 가정이 깨진 사람은 아니구나.’

지금 생각하면 참 단순한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다시 배신당하는 일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남편은 꽤 오랫동안 저를 기다려줬습니다.

주말이면 차를 몰고 제가 사는 동네까지 왔고, 집 근처 칼국수집이나 오래된 기사식당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비 오는 날에는 따뜻한 커피를 사 들고 집 앞까지 오기도 했습니다.

연애하면서 저는 조금씩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과라면 조용히 늙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2년 가까이 만나고 재혼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연애 초반 어느 날이었습니다.

남편이 돌아가신 아내의 기일이라고 했습니다.

제사 음식을 혼자 준비한다고 했습니다.

퇴근 후 시장에서 동태포와 두부, 숙주, 고사리를 사 왔다고 했습니다.

혼자 부엌에 서서 전을 부치고 있다는 말을 듣는데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갔습니다.

그때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동태전을 부쳤고, 산적 꼬치를 만들고, 나물을 무쳤습니다.

남편은 옆에서 접시를 꺼내고 그릇을 닦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부터 그 일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명절이 가까워지면 제 마음부터 무거워졌습니다

추석이나 설을 앞두면 집 안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명절 일주일 전쯤이면 시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시장 가는 날 정했니?”

그 말을 들으면 저는 습관처럼 메모장을 켰습니다.

소고기 산적감, 동태포, 두부, 숙주, 시금치, 고사리, 도라지, 대추, 밤, 배, 사과.

집 근처 대형마트보다 전통시장이 싸다며 남편과 아침부터 시장에 나갔습니다.

명절 직전 시장은 사람으로 꽉 찼습니다.

생선가게 앞에는 동태포 상자가 쌓여 있었고, 떡집에서는 방금 뽑은 송편 냄새가 났습니다.

전집 앞을 지나면 뜨거운 기름 냄새가 골목까지 따라왔습니다.

장바구니가 양손에 꽉 찰 정도로 사서 집에 돌아오면 그때부터 일이 시작됐습니다.

싱크대 한쪽에는 나물이 쌓이고, 식탁에는 산적 재료가 늘어섰습니다.

동태전, 두부전, 산적.

부친 전은 채반에 겹치지 않게 펼쳐 식혔고, 나물은 종류별로 삶고 볶았습니다.

몇 시간씩 전을 부치고 나면 눈이 따갑고 머리카락이며 옷이며 온통 기름 냄새가 났습니다.

샤워를 해도 손끝에서는 한동안 전 냄새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상을 차릴 때가 되면 돌아가신 시아버님 사진과 남편의 먼저 떠난 아내 사진이 함께 올라갔습니다.

처음엔 그것이 이상한 줄도 몰랐습니다.

‘이 집은 원래 이렇게 하나 보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처음으로 이상하다고 느낀 순간은 사진 때문이었습니다

결혼하고 처음 맞은 명절이었습니다.

제가 전을 접시에 담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사진 좋은 걸로 꺼내놔.”

남편이 장식장 안쪽에서 작은 액자를 하나 가져왔습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의 사진이었습니다.

생전에 찍은 가족사진에서 얼굴 부분만 따로 넣어놓은 사진이었습니다.

사진 속 그분은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액자를 이쪽저쪽 움직여보더니 제게 물었습니다.

“여기 놓으면 잘 보이겠지?”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저는 손에 전이 담긴 접시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네.”

그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제사상이 완성되고 나자 남편이 잠시 상 앞에 서 있었습니다.

저는 뒤쪽 식탁 근처에 서 있었습니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사진 속에는 남편의 먼저 떠난 아내가 있고, 그 앞에는 제가 하루 종일 만든 음식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뒤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그날 처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누구의 자리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있는 거지?’

더 당황스러웠던 일도 있었습니다

어느 명절에는 시어머니가 전날부터 저희 집에 와 계셨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는데, 어머님이 냉장고를 열어보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걔는 동태전을 참 좋아했는데.”

저는 처음에 ‘걔’가 누군지 몰랐습니다.

“누구요?”

“우리 며느리 말이야. 전 며느리.”

그 순간 손에 들고 있던 뒤집개가 멈췄습니다.

시어머니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셨습니다.

“전 부치면 옆에서 뜨거운 거 바로 집어 먹곤 했어. 네 남편이 못 먹게 해도 자꾸 먹고.”

그리고 잠시 뒤에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얘는 전을 조금 얇게 부쳤는데.”

시어머니께서 악의로 하신 말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저 돌아가신 며느리가 생각나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날 오후 내내 전 두께가 신경 쓰였습니다.

제가 너무 두껍게 부쳤나.

간이 다른가.

그 사람이 하던 방식과 내가 계속 비교되고 있는 건가.

그날 저녁 설거지를 하면서 문득 웃음이 나왔습니다.

내가 왜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과 전 부치는 솜씨를 비교하고 있나 싶었습니다.

웃기면서도 서글펐습니다.

“형님이라고 읽으세요.”

그러던 어느 제삿날이었습니다.

시어머니가 A4 용지 몇 장을 꺼내셨습니다.

제사 때 읽을 낭독문이라고 했습니다.

가족들이 차례로 읽는 글이었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종이를 받아 들었는데 한 문장에서 눈이 멈췄습니다.

남편의 먼저 떠난 아내를 제가 ‘형님’이라고 부르게 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잘못 읽었나 싶었습니다.

다시 봤습니다.

분명히 형님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잠깐 망설였습니다.

그때 시어머니가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거기 그냥 형님이라고 읽으면 돼.”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습니다.

제가 왜 그분을 형님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향 냄새가 나는 조용한 방 안에서 모두가 제 입만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결국 읽었습니다.

“형님…”

제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데 이상하게 목소리가 작아졌습니다.

제사가 끝난 뒤 저는 아무 말 없이 설거지를 했습니다.

싱크대에는 제사 그릇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거실에서는 남편과 시어머니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수도꼭지에서 뜨거운 물이 계속 흘렀습니다.

그릇을 닦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

‘나는 지금 이 집에서 대체 무슨 관계지?’

어느 날에는 제 옷까지 비교됐습니다

시어머니 생신을 앞두고 가족끼리 외식을 한 날이었습니다.

저는 남편과 함께 조금 일찍 도착했습니다.

식당 룸에서 어머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이 제 옷을 보더니 말했습니다.

“이런 색 처음 입네.”

그냥 별 뜻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도착한 시어머니가 저를 보자마자 말씀하셨습니다.

“어머, 걔도 이런 색깔 좋아했는데.”

순간 공기가 멈춘 것 같았습니다.

남편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는 곧바로 다른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 애가 옷 입는 건 참 깔끔했지.”

저는 그날 연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한동안 그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누가 입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고, 남편이 비교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옷을 꺼낼 때마다 그날 식당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결정적인 일은 이번 추석이었습니다

이번 추석도 전날부터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아침부터 전을 데우고, 과일을 씻고, 나물을 다시 볶았습니다.

사과와 배는 제사상에 올릴 것을 따로 골라놓았습니다.

흠집 난 과일은 가족들이 먹을 접시에 놓았습니다.

남편은 상을 옮기고 저는 계속 부엌과 거실을 오갔습니다.

제사를 시작할 시간이 가까워졌습니다.

그때 남편이 제게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당신 그냥 방에 있어.”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못 들은 줄 알았습니다.

“뭐?”

“제사 끝날 때까지만 방에 좀 있어.”

“왜?”

남편은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습니다.

“엄마가 좀 불편하대.”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무엇 때문에 불편한지 물었습니다.

남편은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오늘만 그렇게 하자.”

오늘만.

그 말을 듣는데 기가 막혔습니다.

전날부터 제가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장을 본 것도 저였습니다.

산적 꼬치를 끼우고, 나물을 삶고, 전을 부쳤습니다.

아침에는 과일을 씻고 상에 올릴 접시까지 제가 닦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사가 시작되자 저는 없어야 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을 완전히 닫지는 못하고 조금 열어두었습니다.

거실에서 남편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향 피우는 냄새가 방 안까지 들어왔습니다.

한동안 조용하더니 시어머니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생전에 좋아하던 거 많이 해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그 좋아하던 음식을 만든 사람은 저였습니다.

저는 침대 끝에 앉아 제 손을 내려다봤습니다.

아침에 도라지를 무치다 고춧가루가 들어가 손톱 옆이 아직 빨갰습니다.

뜨거운 팬에 손가락을 살짝 데어 반창고도 붙어 있었습니다.

문 밖에는 제가 하루 종일 준비한 음식이 놓여 있었고, 저는 방 안에 혼자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아주 선명하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집의 며느리가 맞나?’

‘나는 남편의 아내가 맞나?’

‘아니면 제사 음식만 만들어주는 사람인가?’

그런데 제사가 끝난 뒤 더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제사가 끝난 뒤 남편이 방문을 열었습니다.

“다 끝났어.”

저는 아무 말 없이 나갔습니다.

상을 치우려고 하는데 시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같이 먹자.”

이 말조차 그날은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제가 있으면 불편하다더니, 음식을 먹을 때가 되니 다시 가족이 된 것 같았습니다.

저는 밥을 거의 먹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식사 중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그래도 잘 챙겨줘서 걔도 좋아할 거야.”

남편은 그냥 웃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제 쪽을 보며 말했습니다.

“네가 음식 잘해서 다행이다.”

순간 숟가락을 내려놓고 싶었습니다.

칭찬인데 하나도 칭찬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필요한 건가?’

‘음식을 잘하니까?’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설거지를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남편이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말했습니다.

“나 오늘 진짜 가사도우미 같았어.”

남편의 표정이 굳었습니다.

남편에게 처음으로 제대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날 밤 저는 남편에게 제가 참고 있던 말을 모두 했습니다.

“나는 당신 전처 제사를 없애라는 게 아니야.”

“아이들에게는 엄마고 당신한테도 소중한 사람이었으니까 기일에 추모하는 것까지는 이해해.”

“그런데 왜 내가 그 사람을 형님이라고 불러야 해?”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계속 말했습니다.

“왜 내가 만든 음식을 올리고 나는 방에 들어가 있어야 해?”

“왜 어머니는 계속 그분이 뭘 좋아했는지, 어떻게 했는지 내 앞에서 말하는데 당신은 아무 말도 안 해?”

남편이 말했습니다.

“엄마가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잖아.”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답답했습니다.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저를 괴롭혔다면 오히려 화를 내기 쉬웠을 겁니다.

그런데 아무도 나쁜 마음이 없다고 말하면서 계속 제 마음만 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면 나는 계속 참아야 해?”

그제야 남편도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럼 어떡하라는 거야? 우리 집은 원래 이렇게 했어.”

우리 집.

그 말이 가슴에 박혔습니다.

저와 남편이 지금 사는 이 집도 우리 집인데, 남편이 말하는 ‘우리 집’에는 제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죽은 사람과 경쟁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남편의 먼저 떠난 아내를 미워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제가 그분과 무엇을 경쟁하겠습니까.

그분은 이미 세상에 없습니다.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소중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 시간을 지우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과거를 존중하는 것과 현재의 배우자가 계속 상처받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누군가의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이 집에 들어온 사람이 아닙니다.

먼저 살던 며느리의 역할을 이어받기 위해 결혼한 것도 아닙니다.

제사 음식을 만들기 위해 재혼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저는 저대로 남편의 아내가 되고 싶었습니다.

주말이면 같이 장을 보고, 저녁을 먹고,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같이 가고, 나이가 들면 집 근처 공원을 천천히 걷는 그런 평범한 부부가 되고 싶었습니다.

요즘은 혼자 살던 시절이 자꾸 생각납니다

가끔 혼자 살던 집이 생각납니다.

저녁 여덟 시에 라면 하나 끓여 먹고도 아무 눈치를 보지 않던 생활.

명절이면 아이들에게 전화 한 번 하고, 오후에는 동네 카페에 앉아 책을 보던 시간.

외롭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은 편했습니다.

지금은 가족이 생겼는데 오히려 제 자리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꾸 생각합니다.

‘내가 재혼을 괜히 했나.’

‘그냥 혼자 살았으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 텐데.’

남편과 시어머니가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그분들에게는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이 너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새로운 사람이 가족으로 들어왔다면, 오래된 방식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저는 남편에게 먼저 떠난 사람을 잊으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단 한 가지를 묻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인가.

함께 남은 인생을 살아갈 아내인가.

아니면 당신 가족이 해오던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사람인가.

그리고 저 자신에게도 묻고 있습니다.

재혼했다는 이유로 배우자의 과거와 가족의 관습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

전통이라는 이유로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은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지.

이번 추석이 지나고 집 안에 밴 전 냄새는 며칠 만에 빠졌습니다.

싱크대에 쌓였던 그릇도 모두 정리했습니다.

냉장고 안 남은 나물도 하나둘 먹어 없앴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말 이 집의 아내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제 머릿속에는 자꾸 같은 질문만 맴돕니다.

나는 아내인가, 제사 음식 하는 사람인가.

이 이야기는 실제 사연에서 출발해, 감정과 흐름을 더 잘 전할 수 있도록 일부 장면과 대화, 생활의 디테일을 더해 한 편의 이야기로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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