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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공포 이야기와 인생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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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파일 고스트 아카이브공포 괴담

파주 17번 창고

By seoulaura
9월 27, 2026 12 Min Read
0

파주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이상하게 같은 말을 합니다.

새 건물이 올라오기 전의 땅을 기억하는 사람과,
건물이 올라온 뒤에 이사 온 사람은
같은 동네에 살아도 전혀 다른 곳을 기억한다고.

신도시가 생기기 전에는 논이 있었고,

논이 생기기 전에는 군부대가 있었고,

군부대가 들어오기 전에는 무덤이 있었다는 식의 이야기.

대부분은 과장입니다.

술자리에서 한 번쯤 나오는 지역 괴담이고,

땅값이 오르면 사라지는 옛날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아버지가 절대로 팔지 않는 땅이 하나 있었습니다.

파주 외곽.

큰길에서 공장지대로 들어가 다시 비포장도로를 조금 따라가면 나오는

낡은 창고 부지.

등기부상 번지는 평범했습니다.

하지만 집에서는 아무도 그 땅을 주소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회사 직원들도

그냥 이렇게 불렀습니다.

17번 창고.

문제는 창고 번호가 17번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 건물에는 처음부터 번호 같은 게 없었습니다.

경기권을 도는 집안

우리 집은 대대로 부자는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세대에서 갑자기 커진 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젊을 때 화물차 두 대로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고양과 파주 일대 공장 물류를 뛰었고,

조금씩 창고업에 손을 댔습니다.

그다음에는 김포와 양주,

의정부,

남양주 쪽까지 거래처가 늘었습니다.

IMF 이후에는 부도가 난 공장 부지를 싸게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버린 창고.

법원 경매에 나온 물류센터.

도로가 나기 전이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땅.

아버지는 그런 곳을 잘 골랐습니다.

10년 뒤 도로가 생기고,

산업단지가 들어오고,

주변에 아파트가 올라가면

그 땅들은 몇 배씩 올랐습니다.

주변에서는 아버지를 두고

‘땅 냄새를 맡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말을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술을 마시면 가끔 웃으며 말했습니다.

“남들이 보기 싫어하는 땅을 사야 돈이 된다.”

우리 가족은 파주에 살았지만

사업은 경기 북부 전역에 퍼져 있었습니다.

운송회사.

소규모 창고.

임대 건물.

건자재 납품.

법인은 여러 개였고,

회사마다 이름도 달랐습니다.

어릴 때 저는 우리 집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냥 아버지가 늘 바빴고,

회사 사람들이 집에 자주 왔고,

명절이면 모르는 어른들이 과일 상자를 들고 찾아오는 집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오래 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같이 사업을 시작했다는 남자.

우리는 그를 박 이사라고 불렀습니다.

어릴 때부터 삼촌처럼 지냈습니다.

박 이사는 늘 웃었습니다.

아버지가 화를 내면 대신 웃었고,

어머니가 걱정하면 괜찮다며 웃었고,

회사에서 사고가 나도

“사람 안 죽었으면 됐지.”

하고 웃었습니다.

그 말을 저는 아주 오래 기억하게 됐습니다.

17번 창고

제가 그 땅을 처음 본 건 스물일곱 살 때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회사에서 몇 년 일하다가

아버지 회사로 들어온 뒤였습니다.

아버지는 본사 일보다 현장을 먼저 배우라고 했습니다.

김포 창고 하나,

양주 공장 하나,

파주 적재장 두 곳을 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박 이사가 말했습니다.

“오늘 마지막 한 군데만 보자.”

차는 파주 외곽으로 향했습니다.

당시에도 개발이 한창이던 지역에서 조금 더 벗어난 곳이었습니다.

아파트가 끊기고,

공장과 밭이 섞여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큰길에서 빠져나오자 가로등 간격이 길어졌습니다.

마지막에는 아스팔트도 끝났습니다.

비포장 길 안쪽에

낡은 철제 펜스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길쭉한 단층 창고가 하나 있었습니다.

외벽은 회색 샌드위치 패널.

지붕 한쪽은 녹슬어 있었고,

창문 대부분은 철판으로 막혀 있었습니다.

“여긴 뭐 하는 데예요?”

제가 물었습니다.

박 이사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차에서 내린 뒤 담배를 먼저 피웠습니다.

그러다 말했습니다.

“옛날에 아버님이 처음 산 물건 중 하나야.”

“왜 안 써요?”

“쓸 일이 없으니까.”

이상했습니다.

아버지는 빈 땅을 그냥 두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임대를 놓든,

철거를 하든,

담보를 잡든

뭐라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땅은

20년 가까이 그대로였다고 했습니다.

“팔면 되잖아요.”

박 이사가 저를 봤습니다.

그리고 웃었습니다.

“사겠다는 놈이 없었어.”

“요즘은 땅값 많이 올랐잖아요.”

“요즘은 그렇지.”

“그럼 팔면 되죠.”

박 이사는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밟았습니다.

“아버님한테 직접 말해봐.”

이상하게 그 말투가

‘팔 수 있으면 팔아봐’처럼 들렸습니다.

창고 안

안에 들어가 보자고 한 건 저였습니다.

박 이사는 싫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볼 것도 없어.”

“현장 배우라면서요.”

잠깐 저를 보더니

열쇠를 꺼냈습니다.

자물쇠는 새것이었습니다.

건물은 낡았는데,

자물쇠만 최근에 교체한 것처럼 반짝였습니다.

철문을 열자

안쪽에서 차가운 냄새가 나왔습니다.

곰팡이 냄새도 있었고,

기름 냄새도 있었고,

오래된 종이 상자를 젖은 채로 놔둔 것 같은 냄새도 났습니다.

안은 예상보다 넓었습니다.

예전에는 식자재나 냉동식품을 보관하던 곳 같았습니다.

천장에는 사용하지 않는 배관이 지나갔고,

한쪽에는 낡은 냉동실 문도 남아 있었습니다.

바닥에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군데만 깨끗했습니다.

창고 가장 안쪽.

바닥에 가로 약 2미터,

세로 3미터 정도 되는 사각형.

그 부분만 먼지가 거의 없었습니다.

“여기 뭐 있었어요?”

제가 물었습니다.

박 이사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까이 가자

갑자기 팔을 잡았습니다.

“거긴 가지 마.”

생각보다 세게 잡았습니다.

제가 웃으며 팔을 뺐습니다.

“왜요?”

박 이사는 몇 초 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평소처럼 웃었습니다.

“바닥 약해.”

바닥은 콘크리트였습니다.

균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날은 그냥 나왔습니다.

그런데 차에 타기 직전,

창고 뒤쪽에서 뭔가 보였습니다.

작은 콘크리트 배수로.

그 옆에

녹이 슨 철제 번호판 하나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숫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17.

제가 그걸 들자

박 이사가 바로 빼앗았습니다.

“쓰레기야.”

“이게 왜 여기 있어요?”

그는 번호판을 창고 옆 풀숲에 던졌습니다.

“가자.”

그날 처음 들었습니다.

직원들이 그곳을 왜

17번 창고라고 부르는지.

1999년 겨울

그 일을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몇 주 뒤

본사 문서창고를 정리하다가 오래된 서류 상자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우리 회사가 법인으로 바뀌기 전 자료들이었습니다.

차량 등록증.

옛날 거래명세표.

토지 계약서.

세금 영수증.

맨 아래에는 오래된 신문 몇 장이 있었습니다.

누렇게 변한 지역신문이었습니다.

날짜는 1999년 겨울.

사진이 하나 있었습니다.

눈 덮인 도로.

경찰차.

비닐을 두른 어떤 장소.

제목 일부가 찢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은 글자는 읽을 수 있었습니다.

“…대 여성 실종 사건, 수사 장기화”

기사를 읽었습니다.

20대 여성이 파주 인근에서 실종됐고,

마지막으로 확인된 위치가 산업도로 주변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며칠 뒤 차량이 발견됐지만

본인은 찾지 못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관련 기사 한 장이 더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몇 달 뒤였습니다.

“공장지대 야산서 유류품 발견”

사람이 발견됐다는 표현은 없었습니다.

유류품.

가방.

신발 한 짝.

여성용 시계.

그게 전부였습니다.

기사를 읽는데

이상한 주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옛 지번이었습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어딘가 익숙했습니다.

컴퓨터로 옛 지번을 확인했습니다.

몇 차례 분할과 합병을 거친 뒤

현재 주소를 찾았습니다.

17번 창고에서

직선거리로 3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그 순간에도

저는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지역에 공장이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신문을 다시 접으려다

뒷면에 적힌 글씨를 봤습니다.

볼펜으로 누군가 메모해 놓았습니다.

17 / 2월 11일 / 정리 완료

아버지 글씨였습니다.

저는 아버지 글씨를 압니다.

수십 년 동안 생일카드에 적힌 글씨도,

회사 결재서류에 적힌 글씨도 봤으니까요.

틀릴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물었다

저녁에 아버지를 찾아갔습니다.

신문을 책상 위에 올렸습니다.

아버지는 제목을 보자마자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아주 잠깐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봤습니다.

“이게 왜 회사 서류에 있어요?”

아버지가 신문을 접었습니다.

“옛날 거야.”

“이 사건 알아요?”

“그 동네 사람들은 다 알았지.”

“17번은 뭔데요?”

아버지의 손이 멈췄습니다.

“뭐?”

“뒤에 적혀 있잖아요.”

제가 신문을 뒤집었습니다.

아버지는 메모를 한참 봤습니다.

그리고 신문을 서랍 안에 넣었습니다.

“옛날 현장번호겠지.”

“그 창고 말하는 거예요?”

아버지가 저를 봤습니다.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 얼굴에서 화가 아닌 다른 걸 봤습니다.

겁이었습니다.

“거기 갔냐?”

“네.”

“누구랑?”

“박 이사님이랑.”

아버지가 의자를 밀고 일어났습니다.

“다시는 가지 마.”

“왜요?”

“그냥.”

“뭐가 있는데요?”

아버지가 목소리를 낮췄습니다.

“아무것도 없어.”

이상한 대답이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면

다시는 가지 말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날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말했습니다.

“그때 일은 우리하고 상관없어.”

저는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박 이사가 사라졌다

며칠 뒤부터 박 이사가 회사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지방 출장을 갔다고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몸이 안 좋다고 했습니다.

일주일 뒤에는

아예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가족들도 행방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직원들에게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게 더 이상했습니다.

저는 박 이사 책상에서 개인 물건을 정리하다가

작은 수첩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휴대폰 번호와 거래처 이름이 적힌 평범한 수첩.

뒤쪽 몇 페이지에는 날짜만 적혀 있었습니다.

1999년.

1월 28일.

2월 3일.

2월 11일.

그리고 2월 11일 옆에

작게 적혀 있었습니다.

17번. 세 명. 새벽 2시.

그다음 줄.

차 따로.

그 아래는 볼펜으로 여러 번 긁어 지운 흔적.

형광등 아래 비춰보니 눌린 자국이 조금 보였습니다.

한 단어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여자

저는 그날 처음으로 경찰에 갈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가진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래된 기사.

메모.

번호.

그리고 제 추측.

무엇보다

아버지가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저를 붙잡았습니다.

사람이 가족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진실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워집니다.

진실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진실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무서워집니다.

새벽 전화

그날 새벽 2시가 조금 넘어 전화가 왔습니다.

발신번호 표시 제한.

처음에는 받지 않았습니다.

다시 왔습니다.

세 번째에 받았습니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여보세요?”

정적.

그리고 멀리서

무언가 끌리는 소리.

사각.

사각.

콘크리트 위로 무거운 비닐이나 천을 끄는 소리 같았습니다.

“누구세요?”

잠시 뒤 남자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주 작았습니다.

“봤냐?”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수첩.”

전화가 끊겼습니다.

손끝이 차가워졌습니다.

수첩을 본 걸 아는 사람은 저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바로 집 안을 확인했습니다.

현관.

창문.

베란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밖에서 자동차 시동 소리가 났습니다.

창문을 조금 열고 아래를 봤습니다.

검은 SUV 한 대가 골목 끝에서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번호판은 보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 출근하자

제 책상 서랍이 열려 있었습니다.

수첩은 사라졌습니다.

다시 17번 창고

그날 저녁 아버지를 찾아갔습니다.

이번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박 이사 어디 있어요?”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건하고 우리 회사 관계있어요?”

“없어.”

“그럼 왜 수첩을 가져갔어요?”

아버지 눈이 움직였습니다.

“무슨 수첩?”

그 반응으로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수첩이 사라진 걸 알고 있었습니다.

“17번 창고 안에 뭐 있었어요?”

아버지가 한참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더니 물었습니다.

“너 거기 안쪽 바닥 봤냐?”

“봤어요.”

그 순간 아버지가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습니다.

“파지 마.”

제가 웃었습니다.

화가 나서였습니다.

“뭘요?”

아버지는 저를 보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또 그 말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파지 마라.

저는 그날 밤 혼자 17번 창고로 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두려움보다 궁금증이 커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확인하지 않고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 때.

창고 앞에 도착했을 때는 밤 11시가 넘었습니다.

철제 펜스 문은 잠겨 있지 않았습니다.

며칠 전에는 분명 자물쇠가 있었습니다.

창고 문도 조금 열려 있었습니다.

누군가 먼저 들어간 것 같았습니다.

휴대폰 손전등을 켰습니다.

안쪽 바닥의 사각형으로 갔습니다.

먼지가 없는 부분.

이번에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바닥 한쪽에 얇은 금이 나 있었습니다.

최근에 생긴 것처럼 깨끗했습니다.

누군가 콘크리트를 다시 덮은 흔적 같았습니다.

그때 뒤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철문 닫히는 소리.

쾅.

손전등을 돌렸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누구예요?”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창고 반대편에서

휴대폰 진동음이 들렸습니다.

부르르.

부르르.

바닥에 전화기 하나가 있었습니다.

박 이사의 휴대폰이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케이스였습니다.

액정은 깨져 있었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제 번호였습니다.

제 손에 있는 휴대폰은 아무 통화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진동이 멈췄습니다.

곧 메시지가 하나 떴습니다.

발신자 없음.

문장은 짧았습니다.

2월 11일에 네 아버지도 여기 있었다.

그날의 세 사람

다음 날 아침

아버지가 먼저 제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제가 창고에 간 걸 알고 있었습니다.

“누가 말했어요?”

“CCTV.”

“거기 CCTV 없잖아요.”

아버지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서 있다가

침대 끝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27년 전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아버지와 박 이사,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세 사람.

수첩에 적혀 있던 숫자와 같았습니다.

세 번째는 당시 물류회사의 기사였습니다.

이름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계속 말했습니다.

“우린 사람 죽이는 놈들이 아니었다.”

첫 문장이 그거였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여자가 거기 와 있었던 건 맞아.”

숨이 막혔습니다.

아버지는 사건 피해자 이름도 알고 있었습니다.

신문에 나온 이름이었습니다.

여자는 누군가와 거래 문제로 다투다가

창고까지 따라왔다고 했습니다.

그 뒤 설명은 흐렸습니다.

누가 먼저 소리를 질렀는지.

누가 밀었는지.

왜 차가 다른 곳에서 발견됐는지.

무엇을 세 명이 ‘정리’했는지.

아버지는 계속 같은 말만 반복했습니다.

“내가 죽인 건 아니야.”

그 말은

아버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처럼 들렸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시신 어디 있어요?”

아버지가 저를 봤습니다.

그 순간,

처음으로 진짜 무서워졌습니다.

아버지 얼굴에 놀람이 없었습니다.

“왜 시신이 있다고 생각해?”

저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기사는 사람 못 찾았다고 했잖아.”

그 말이 이상했습니다.

너무 정확했습니다.

27년 전 기사 문장을

어제 읽은 사람처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파지 마

그날 저녁부터 회사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아버지는 17번 창고 부지를 급하게 매각하려고 했습니다.

매수자는 처음 듣는 법인이었습니다.

대표 이름도 낯설었습니다.

그런데 등기를 확인해보니

설립한 지 석 달밖에 되지 않은 회사였습니다.

주소지는 박 이사가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사무실과 같은 건물이었습니다.

박 이사는 여전히 행방불명 상태였습니다.

며칠 뒤

저는 아버지 몰래 지질조사업체에 연락했습니다.

건물 철거 전 지반 상태를 확인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정식 굴착이 아니라

바닥 아래 공동 여부만 장비로 볼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약속 날짜는 금요일 오전이었습니다.

목요일 밤,

어머니가 제게 전화했습니다.

울고 있었습니다.

“너 내일 어디 가지 마.”

“왜요?”

“아빠가 그러는데…”

한참 말을 못 했습니다.

“땅 파지 말래.”

저는 순간 소름이 돋았습니다.

지질업체와 통화한 사실은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에게도.

회사 전화가 아니라 개인 휴대폰으로 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어떻게 알아?”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전화 너머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멀리서.

아주 작게.

“그 애도 알게 됐어?”

전화가 끊겼습니다.

금요일

저는 그래도 갔습니다.

업체 기사 두 명과 함께.

17번 창고 앞에는

먼저 와 있는 차량이 있었습니다.

검은 SUV.

며칠 전 새벽 집 앞에서 본 것과 비슷했습니다.

번호판은 달랐습니다.

창고 문은 열려 있었습니다.

안에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혼자였습니다.

“기사들 보내.”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습니다.

지질업체 사람들은 분위기를 보고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창고 안에 남았습니다.

“왜요?”

“여기 팔 거야.”

“그래서 확인하는 거잖아요.”

“확인할 거 없어.”

“아무것도 없다면서요.”

아버지가 저를 보았습니다.

눈이 충혈되어 있었습니다.

며칠 사이 몇 년은 늙은 사람 같았습니다.

“없는 걸로 살면 없어지는 것도 있어.”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제가 바닥을 가리켰습니다.

“여기 밑에 뭐 있어요?”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사람 있어요?”

그 순간

창고 입구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자동차 문.

그리고 발소리.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저는 뒤를 돌아봤습니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깥에서는 발소리가 계속 났습니다.

자갈을 밟는 소리.

사각.

사각.

아버지가 갑자기 제 팔을 잡았습니다.

“듣지 마.”

“뭐를요?”

“세 명이야.”

아버지 손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항상 세 명으로 들려.”

밖에는 지질업체 기사 두 명뿐이었습니다.

바닥

우리는 결국 조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기사들을 보냈습니다.

저는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호텔에서 잤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가 실종됐습니다.

차는 17번 창고 앞에서 발견됐습니다.

휴대폰도 차 안에 있었습니다.

CCTV는 없었습니다.

주변 블랙박스에도

아버지가 창고로 들어가는 장면만 남아 있었습니다.

나오는 모습은 없었습니다.

경찰이 수색했습니다.

창고 안도 봤습니다.

특이사항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바닥을 확인해달라고 했습니다.

경찰은 처음에는 별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실종과 과거 미제사건 관련 가능성을 이야기하자

결국 추가 확인이 들어갔습니다.

그 뒤부터

가족에게는 수사 내용을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몇 주 뒤 창고 출입이 통제됐습니다.

그리고 바닥 일부가 뜯겼습니다.

저는 현장 안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멀리서만 봤습니다.

콘크리트 절단기 소리.

드르르르르.

회색 먼지.

경찰.

과학수사 차량.

그날 저녁 수사관 한 명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님이 이 부지를 언제 취득했습니까?”

1999년.

실종사건이 발생한 해였습니다.

“직접 매입하셨습니까?”

저는 그렇다고 했습니다.

수사관은 잠시 기록을 봤습니다.

“원 소유자가 누구였는지 아세요?”

몰랐습니다.

그가 이름을 하나 말했습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이 익숙했습니다.

박 이사와 같은 성.

알고 보니 박 이사의 친형이었습니다.

발견된 것

경찰은 공식적으로 저에게 많은 걸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저도 지금 여기서

무엇이 실제로 발견됐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뒤 벌어진 일은 압니다.

17번 창고는 매각되지 않았습니다.

공사가 전면 중단됐습니다.

수사기관 사람들이 여러 차례 드나들었습니다.

박 이사 실종도 따로 조사되기 시작했습니다.

27년 전 미제사건 자료도 다시 들여다본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수사관이 제게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보여줬습니다.

1999년 당시 사건 관계자들을 조사하면서 확보했다는 사진이었습니다.

어느 식당에서 찍힌 단체사진.

아버지.

박 이사.

몇 명의 직원.

그리고 맨 끝에 젊은 여자 하나가 있었습니다.

신문에 실린 실종 여성과 닮아 있었습니다.

수사관이 물었습니다.

“이분 아세요?”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조금 더 보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습니다.

여자 뒤쪽.

식당 유리창에

사진을 찍는 사람의 모습이 반사되어 있었습니다.

카메라를 든 사람.

얼굴은 흐렸습니다.

그런데 옷은 익숙했습니다.

27년 전 사진인데도

최근에 사라진 박 이사가 늘 입던

회사 점퍼와 너무 비슷했습니다.

물론 우연일 수 있습니다.

점퍼는 흔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진 뒷면에 날짜가 적혀 있었습니다.

1999년 2월 11일.

그리고 작은 글씨 하나.

17

지금도 남은 것

우리 가족은 파주에 계속 살고 있습니다.

사업은 많이 정리했습니다.

김포 창고도 팔았고,

양주 공장도 넘겼습니다.

17번 창고만 아직 남아 있습니다.

수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모릅니다.

저는 더 이상 회사 일을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사라지고 나서

경기 북부 쪽 현장을 혼자 다니는 것도 그만뒀습니다.

다만 가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옵니다.

발신번호 표시 제한.

처음 몇 번은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술을 마신 뒤 실수로 받았습니다.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창고 안에서 듣던 것 같은

메아리가 들렸습니다.

사각.

사각.

누군가 콘크리트 바닥 위로

무언가를 끌고 가는 소리.

저는 전화를 끊으려 했습니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버지 같았습니다.

아주 작게.

“파지 마.”

전화가 끊겼습니다.

저는 그 뒤로

17이라는 숫자를 싫어하게 됐습니다.

주차번호 17번도 피하고,

호텔 17층도 싫고,

영수증 금액 끝자리가 17이어도 괜히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등기 관련 서류 때문에 옛 회사 파일을 다시 볼 일이 있었습니다.

17번 창고 최초 취득계약서가 나왔습니다.

계약서를 보다가

저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매매계약일.

1999년 2월 12일.

사진을 찍은 다음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계약서 아래쪽,

아버지 서명 옆에

증인 두 명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박 이사.

그리고 한 사람.

저는 그 이름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검색해봤습니다.

오래된 기사 하나가 나왔습니다.

1999년 실종 여성의 마지막 행적을 목격했다고 진술한

화물차 기사.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 기사는

몇 달 뒤 정정됐습니다.

그 기사가 처음 했던 진술을 번복했고,

이후 연락이 끊겼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사람의 이름은

우리 회사 옛 직원명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계약서에는

분명히 적혀 있었습니다.

증인.

마지막으로 그 서류를 정리하다가

계약서 뒷장에 눌린 자국을 발견했습니다.

연필로 살짝 문질러봤습니다.

종이 위에 희미하게 글자가 올라왔습니다.

누군가 위에 다른 종이를 놓고 적었던 문장이었습니다.

짧았습니다.

세 명이면 된다.

그리고 그 아래,

조금 떨어진 곳에 한 줄이 더 있었습니다.

하나는 남는다.

저는 그 종이를 다시 접었습니다.

이제는

무슨 뜻인지 알고 싶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도,

박 이사가 어디 있는지도,

27년 전 그 창고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다만 가끔 생각합니다.

우리 집안이 경기 북부에서 그렇게 빨리 사업을 키울 수 있었던 게

정말 아버지가 ‘땅을 보는 눈’이 좋아서였을까.

사람들이 버린 땅을

왜 아버지는 그렇게 싸게 살 수 있었을까.

그리고 왜 그중 단 한 곳만

20년이 넘도록 팔지도,

개발하지도,

철거하지도 않았을까.

17번 창고.

그곳에서 발견된 것이 무엇인지

저는 공식적으로 들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바닥을 뜯은 뒤부터

아버지 회사 사람들은

그곳을 더 이상 17번 창고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아무도 번호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 땅.

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도

파주 외곽을 운전하다가

도로 옆으로 오래된 회색 창고가 보이면

속도를 줄이지 않습니다.

혹시 잘못 봤다가

철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알아볼까 봐.

아버지인지.

박 이사인지.

아니면 1999년 겨울,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누군가인지.

그게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제가 가장 무서운 건

그 셋 중 누구도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처음부터 그 창고에 있었고,

아버지보다 먼저 그 땅을 알고 있었으며,

27년 동안

사람이 바뀔 때마다 같은 자리를 지켜온

네 번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이 글에 대하여

이 작품은 온라인상에 공유된 여러 도시괴담, 미제사건을 소재로 한 이야기, 경기 북부 지역의 개발지·공장지대에 관한 이미지와 분위기 등을 모티브로 삼아 창작적으로 각색·재구성한 현실공포 픽션입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가족관계, 회사, 법인, 사업 내용, 창고, 토지, 주소, 연도, 사건 경위, 수사 과정, 기사 내용 및 각종 기록은 이야기적 완성도와 개인·단체 식별 방지를 위해 창작·변형·통합된 설정입니다.

특히 작품 속 실종·미제사건 및 범죄 정황은 실제 특정 사건이나 피해자, 특정 기업·사업가·토지 소유자·지역 주민을 지칭하거나 사실관계를 재현한 것이 아닙니다. 파주 및 경기권이라는 지명은 작품의 공간적 분위기를 위한 배경 설정이며, 실제 해당 지역에서 발생한 특정 사건과의 연관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실존 인물이나 실제 사건과 일부 표현·상황이 우연히 유사하더라도 이는 특정 대상을 묘사하거나 의혹을 제기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본 작품은 사실 보도나 사건 기록이 아닌 창작 서사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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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a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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